-'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서평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 노자
이 책은 우울과 불안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라는 개체는 우울과 불안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때때로 심각한 우울과 불안 증상을 겪기도 합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사람이라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우울, 그리고 아직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나와 타인 사이의 비교우위를 가늠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우울과 불안 속에서 작아집니다. 그렇기에 특정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듯, 마음의 병에 걸렸을 때 정신과적 약을 차아 나서는 일이 편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해당 책 p.264
우울과 불안 증상은 두고 두고 회자되어야 할 정신병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 몸의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감기가 찾아오듯, 우리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찾아오는 그런 것입니다. 이 책을 간단히 몇 줄로 소개하자면, 이 책은 우울과 불안이 어떻게(how) 생긴 것인지, 또 왜(why) 생긴 것인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알려주는 책입니다. 더 나아가 우울과 불안을 어떻게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당장 감기가 걸리게 되면 상비약을 먹고 쉬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또는 병원에 찾아가 전문의의 자문을 구하는 것처럼 이 책은 우울과 불안이라는 마음의 감기에 대한 대처방안을 알려줍니다.
오직 나만이 내 마음의 역치를 알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해당 책 p.212
저자는 사례를 통해 아주 쉽지만 상세하게 우울과 불안에 대해 알려줍니다.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면, 이 책은 독자가 자기 자신을 내담자로 설정하고, 독자가 스스로 그 내담자의 상담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침서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최고의 정신과 담당의는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앞서 치료대상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야하는데 그 중 마음만큼은 특히나 내 마음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진단내릴 수 있도록 보조해줍니다.
<MY OPINION>
처음 이 책을 펴 들었을 때, 조금 지루하다 여겼습니다. 오랜 시간 명상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수차례 들어왔고 내 마음이 가진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수차례 알아차리고 수용하고 흘려보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제가 우울과 불안에 대한 교과서라고 표현한 만큼 저보다는 입문자에게(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직 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다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했듯, 쉽지만 꽤 상세하게 우울과 불안에 대해 많은 것들을 함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과 회사를 떠나면서 갖고 있는 불안을 꽤 잘 컨트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 또한 이 책을 통해 얻은 3가지가 있었습니다.
1. 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패턴
저는 개인적으로 머리카락을 뽑는 습관이 있습니다. 조금이 아니라 바닥에 수북히 쌓일 만큼 뽑습니다. 어릴 적엔 지금보다 훨씬 잦은 횟수로 더 많이 머리카락을 뽑아댔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형탈모로 오해할 만큼 정수리가 휑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저를 압도할 때 하는 행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일뿐 내가 왜 불안을 머리카락을 뽑는 것과 연관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해’의 일종이었다는 것을요.
2. 나는 이제 불안하지 않다는 생각
요즘 저는 제가 꽤나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저의 기질상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제 마음의 기저에 늘 깔려 있는 것은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안도 잘 느끼는 편이긴 하지만 요즘의 저는 저의 불안을 잘 컨트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우울과 불안의 형태에 대해서 읽는 동안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우울과 불안'을 허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우울'을 불러오는 과거에 대한 후회 와 '불안'을 야기하는 미래에 대한 가정은 허상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울'이라는 감정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제 안에 살아 숨쉬는 실상이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마음으로 내려오기 까지는 참으로 시간이 걸리나 봅니다. 이러한 착각은 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들었습니다. '난 이제 그게 사실이 아닌 걸 알아서 이전만큼 괴롭지 않아. 아는만큼 감정의 깊이가 깊지 않은데 뭐가 문제야? 이 이상 편하고 싶어?'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정도는 나아졌을지언정 '많이 발전했구나. 지금 아주 잘 해내고 있어. 때때로 힘든 순간에도 알아차리고자 노력하는 니가 대견해.'라고 말해주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답게 성장하는 삶이란 타고난 기질을 받아들이고, 변할 수 있는 성격을 바꿀 때 이룰 수 있다는 뜻이지요. 기질및 성격 검사 통합 매뉴얼 개정판에서는 “자신의 기질이 그대로 수용되는 환경은 성격의 발달로 이루어지고, 성격의 성숙은 기질 반응의 조절로 이어진다.” 라고 설명합니다. - 해당 책 p.274
3. 채찍말고 당근!
1년 전, 자비명상 8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이 성장하기 위해 ‘채찍’은 필요한 것일까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토론형식의 질문과 대화였기에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는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솔직히 바로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었고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저는 성적 향상을 위해 혹은 잘못된 습관을 고친다는 명목하에 일상적으로 체벌을 받고 폭언을 듣고 자랐습니다. 저는 그 방식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제 성장에 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께 그런 채찍질을 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한 제 마음의 상처는 제 자신의 정신적 나약함을 탓해왔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꽤 오랜 끝에 내린 제 결론은 ‘체벌과 폭언은 끝끝내 우리에게 악영향을 남긴다’라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채찍질이 가해지는 그 순간 저의 행동은 교정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채찍질의 상흔은 ‘나는 채찍질을 당할 수도 있을 만큼 소중하지 않은 혹은 모자란 존재’ 라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님의 채찍 없이도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 그 흉터는 도통 아물 틈이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나란 존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채찍질로 이루어냈던 '성장'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습니다. 채찍질로 성장한 나는 '아무것도' 아닌 '모자란' 존재였으니까요.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 저는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늪을 겪어내고 나서야 저는 스스로에게 하던 채찍질을 멈추고 과거에 받았던 채찍질의 흉터를 보듬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채찍질은 '단호한 의견 전달'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을 읽게 된거죠! 제 의견에 대한 과학적인 지지를 받게 되어 기뻤습니다.
우리는 (고통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서) 처벌이 장기적으로 어떤 행동의 발생 확률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점차 발견하고 있습니다. - 스키너
위의 3가지의 이 외에도,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16가지 단계'에 대한 내용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각종 명상의 방법들과 매칭이 되는 내용들이 심리학적으로 접근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근육 이완법 같은 경우 요가 니드라에서 이완시켜나가는 순서나 부위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알고 있는 각종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기초부터 심화까지 16단계로 순서를 정해놓았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가볍게 시작하는 준비운동부터 코어근육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의 형태로 정리를 해놓았다는 것이 그러했습니다.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논리적으로 하나 하나 짜임을 갖게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가요?
이처럼 내 마음의 안부를 묻는 것은 매 순간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성뿐 아니라 감정에도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근육을 기르는데 있어 입문자부터 경력자까지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경력자시라면 16단계 부분만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