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1_명상일기(번외)day9
-틱낫한 스님
<오전>
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맑다 못해 고옵다. 이런 날 집에 있을 수 없어 후다닥 씻고, 아이 등원시키고, 운전대를 잡았다. 초보운전이라 조금은 불안하지만 부릉부릉 신나게 해안가를 향했다. 할 일들을 백팩에 잔뜩 챙겨서는 해안가 카페에 도착했다. ‘와 지인짜 곱다!’ 하늘도 바다도 오늘은 수채화 물감을 한껏 베어 문 듯하다.
커피 한 잔과 좋아하는 당근케이크 한 조각을 옆에 두고, 일단 노트북을 연다. 감성 과다로 글이 한순간에 휘릭 쓰인다. 평소 하루 A4 두 장 분량 정도의 글을 썼다면, 오늘은 네 장을 후딱 써놓고는 또다시 가방 지퍼를 열어 붓펜과 연습장을 꺼낸다. 글도 캘리그래피도 마치 뭐에 홀린 듯이 해댔다. 양껏 해놓고도 더 하고 싶은 마음…
오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서 글쓰기와 캘리는 겨우 손을 떼어 놓았다. ‘오늘처럼 자연과 함께할 때, 명상은 무조건 빠뜨릴 수 없지!’ 그러나 사람이 많은 관계로 이어폰을 끼고 시선은 바다를 향했다. 마치 바다 보는 듯 무심히 명상 3-step을 3분 안에 마쳤다. 그리고 카페를 나와 해안로 산책을 한 번 해주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명상을 하니 한껏 들뜬 내 마음이 한결 가벼이 짚어진다.
산책을 하는 동안 너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리명상을 이어 갔다. 그렇게 원하던 대로 한 번에 한 가지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오전 내내 만끽했기에 행복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상황. 이게 며칠만인지.. 아니 몇 달 만인지!! 하지만 조증에 가까울 만큼 극적인 행복감은 반대급부로 사소한 것에 의해 금세 가라앉을 수도 있기에 일단 마음을 조금 다스려 본다. 귓바퀴 상단에 주의를 모으고 주변 소리에 귀를 열었다. ‘파도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 일련의 소리들로 마음이 열리고 극에 가까운 행복감이 균형을 맞추려고 꼼지락꼼지락.
<오후>
그렇게 오전을 알차게 보낸 나는 집에 돌아와 세차장에 들렸다가, 요가를 하고, 뒤늦은 점심으로 단호박죽을 먹었다. 그리고 세시쯤 책을 읽다가, 네시쯤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하원 하는 아이를 마중하러 다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늘 내가 불안해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불안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늘 조바심치는 시간 바로 그때인즉슨, 아이 등원 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이유인즉슨 아이와 함께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러다 그 사이 중간중간 비는 시간들이 생길 때, 나는 안절부절이다. 언제 나를 찾을지 모르는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이 틈새 시간들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다. 계속 머릿속으로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하고 킵(keep)하게 된다. 그게 조바심이 나게 하는 원인이자 불안의 원인이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아이와 달리기를 하러 집 근처 고등학교로 나갔다. 아이는 물론 나도 좋아하는 일이다. 뛸 때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다. 아까 그 조바심의 이유를 떠올리다가도, 뛰다가 잠시 멈추어서 주변 나무와 풀냄새를 들이켜면 그 마음이 가라앉는다. 완전히 싸악 내려가진 않아도 ‘그래 그러지 말자 이 풀냄새 좀 봐 너무 좋잖아’라고 말할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조금씩 연습을 한다. 이렇게 조금씩 조바심 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일명 달리기 명상.(이전 글에서 이야기 한 적 있어서 설명은 생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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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볼 꼬집기와 같다. 사람들은 ‘꿈이냐 생시냐’를 확인할 때 제 볼을 꼬집고, ‘정신 차려’ 라며 남의 볼을 꼬집기도 한다. 그것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온건한 방향인지 아닌지 정신 차리기 위해 명상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다만, 볼 꼬집기와 명상의 다른 점이라면 볼 꼬집기는 다소 폭력적이고 명상은 다소 친절하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