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5_명상일기day11
명상(호흡) 하는 것 외 다른 행위들 또한 명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상을 하는 목적은 내가 '나'로 살기 위함이다. 즉, 행복하기 위함이다. 보통 명상시간에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삶의 기술(=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배운다. 삶의 기술 중에는 호기심, 수용, 인내, 열린 마음, 반목적지향 등등이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우리가 한 번에 한 가지 행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맥락으로 이런 목적, 이런 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는 행위는 여럿일 수 있다. 글쓰기, 피아노연주하기, 그림그리기, 운동 등등 (꼭 의례적인 명상이 아니어도) 매우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명상은 '지금 여기에' 머무는 행위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도 글쓰기, 피아노연주 등등이 명상을 대체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내 생각에) ‘나 자신’을 포함해서 ‘지금 여기’에 대한 메타인지가 객관적이다 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어도 내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상태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레벨이다. 그와 동시에 좀 전에 말했던 명상의 목적을 충족하려면 이 상태로 행복해야 한다. 이게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한번 상상해보자. 피아노를 치면서..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1)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나를 인지하는 그 순간일까? 혹은 2) 감성에 휘감겨 피아노와 내가 한 몸이 되는 그 순간일까? (-> 이럴 때 예술적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상상했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흠..
상반되는 의미 같아도, 피아노를 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감성으로 완벽하게 연주를 소화해내는 음악 천재들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꼭 음악 천재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살면서 문득문득 그런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지만 완벽한 그 순간’을 말이다. 그것이 명상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와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