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3_명상일기day42
01. 두 얼굴의 나
내 마음이 너무나 다른 표정을
동시에 짓고 있을 때가 있다.
오늘 달리는 거의 10일만에 유치원에 갔다.
어제 나는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서
오늘부터 등원을 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간만에 가는 것인 만큼 혼선이 있을 수 있기에
10일 전에 말해 놓은 것을 재차 전달해놓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었다.
평소보다 등원버스는 늦어지는데 아무 연락이 없다.
알아보니 깜빡하시고 지나치셨다고 했다.
‘날은 춥고 어제 확인도 드렸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이니 실수하실 수도…’
란 생각도 들었다.
어처구니 없는 마음과 동시에 이해되는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뭔가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이리 이중적이지? 그리고 위선적이지?’
분명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것은 아니지만
사실을 말해주고픈 마음과
이해하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들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하면
‘일단 좋은게 좋은’ 행동을 한다.
다시 말해 굳이 따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렇다.
등원버스는 가던 길을 돌아
다시 우리집 앞에 왔다.
선생님이 사과하시며 아이를 차에 태우셨다.
나는 “괜찮아요. 저희가 너무 오래 등원을 안해서 그렇죠.’라며 오히려 나의 잘못인냥 행동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동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보통 나는 이렇게 자동반사적으로 사람좋은 척을 한다.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어제 전화를…’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서..
반면 안면이 아예 없거나 다신 안 볼 사람에겐
감정이 드러날 때가 종종 있다.
상대방이 ‘이 사람이 지금 감정적으로 불편하군’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정도로…
그리고는 또 스스로 불편해한다.
‘내가 왜 그랬지? 너무 빡빡하고 예민하게 군게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늘 속앓이를 하는 셈이다.
점심쯤 이 글을 썼고
저녁에 퇴고를 하면서 깨달았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문제다.
그로 인해 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이 보여지는 위선자의 일면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매번 혼란을 겪었고
스스로에게 이질감을 느끼며 힘들었구나..
나는 원래는 예민한 사람이 맞다.
그것은 내 삶 속에서 늘 확인되는 바였다.
타인에 비해서 시각이나 청각에 예민한 편이었다.
두통과 변비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나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되도록 티를 안내는 것이
몸에 베여서 보통은 예의를 차리지만,
안타깝게도 낯선 타인에게는
그 예민한 모습이 ‘보다 쉽게’ 그리고
‘오히려 평소 눌러놓은 것이 나도 모르게 울컥’
토해지는 상황이 나타났다.
글을 쓰다 그것을 알아차린 지금
참으로 민망하고 씁쓸할 따름이다.
사람 봐가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꼴이라니…
앞으로는 괜히 오바해서 착한 척(?)하거나
후회할만큼 울컥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지양해야지.
두 가지 상황 모두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이라서
쉽진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위해
좀 더 깨어있는 태도로 찰라의 행동을 알아차리고
살아가고 싶은 바람이다.
02. 변화하고 있는 나의 삶. 변화하게 될 나의 삶.
휴직 후 1년 반이 지났다.
일부러 돈에 쪼들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실제로 그동안 적금한 돈을 남편에게 모두 줘
버리고나서 휴직을 시작했다.
간절해야 움직일거라는 생각으로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을 환경을 구축했다.
휴직은 6개월에 한 번씩 갱신해야하므로
6개월 주기로 나는 나를 점검했다.
돈도 시간도 압박으로 다가왔던 지난 1년 반이었다.
처음엔 극한으로(?) 쫓기는 상황에
마음이 급하고 초조하기 일수였다.
가뜩이나 bgm이 불안인 나이므로 괴로운 때가 많았다.
물론 ‘초조, 불안’은 내가 계획한 것이기도 했다.
‘엎어져도 마냥 누워있을 순 없게’가 나의 계획이었다.
여기서 나의 bgm은 기질이었을까? 교육된성향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났다.
휴직 시작과 함께 세워뒀던 모든 목표치들은
달성된 것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지만은 않다는게 내 마음이다.
그 부산물들로 얻어진 의외의 변화들은
달성되지 못한 목표치들을 대신할 만큼 값졌기 때문에.
(부모님)
이해할 수 없고 원망스러웠던 두 분이
하나의 영혼을 가진 존재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부모만이 아닌 그들자체로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이 진심으로 안쓰럽게 여겨지게 되었고,
그들을 더욱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
한때는 그가 나를 사람이 아닌
소모품 정도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억울함과 허무함에 허우적대면서도
내 아들을 위해 억지로 내어준 마음이었는데
점차 변하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주든 그것을 받으리라’는 인용구가 생각난다.
(나 자신)
마지막으로 나의 새 드림보드가 생겼다는 것.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드림보드가 매년 똑같았다.
다이어트, 영어공부, 부동산공부 등등
드림보드의 결과도 매년 똑같았다.
실천률 50프로 미만…
휴직 후 1년반,
나에게는 새 드림보드가 생겼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 나만의 커리어, 건강과 관련된…
실천률도 내 자랑같지만 꽤 높다.
앞으로도 삶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두렵지 않다.
나는 내 스타일대로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