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독서를 멈춘 이유
교사의 한마디는 만병통치약?
며칠 전 오후에 저는 학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상담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5학년에 들어와 갑자기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학부모님은 아이가 독서 습관을 들일 수 있게 학급에서 전체적으로 독서록을 작성하거나 독서량을 점검하는 식의 활동을 해주실 수 없냐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이미 학급에서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많기 때문에 학급 단위 활동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학부모님은 그러면 학급 단위 말고 본인의 자녀만 따로 독서록을 점검해 주시던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반납하는 걸 관리해 주시면 안 되겠느냐는 요구를 했습니다. 본인이 아이를 지도하려니 아이와 자꾸 사이가 불편해지고 싸우기만 한다며 아이가 선생님 말씀은 잘 들으니 선생님이 한마디 해주시고 관리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겁니다. 저는 해당 아동만 학급 내에서 따로 지도하는 것은 불가하며 아이와 이야기를 한번 나누어 보겠다는 말로 상담을 마쳤습니다.
학부모님도 아이의 독서 습관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거 같았습니다. 집에 티브이도 없애시고 서점에도 같이 가서 책도 구입해보고 도서관에도 같이 가봤지만 아이가 점점 책에 흥미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교사에게 SOS를 치신 겁니다. 오죽하면 교사에게 이런 연락을 하셨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상담을 통해 한편으로는 이래서 아이가 독서에 흥미를 잃었구나 하고 아이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방과 후에 아이를 불러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걱정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한 번도 미루지 않고 언제나 과제도 완벽하리만큼 잘해오는 아이입니다. 성격이 조용하고 내향적인 편이라 앞에 나서는 편은 아니지만 맡은 일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해내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아이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책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도 원래 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집에 책이 많이 있는데 이미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친척 언니에게 물려받아 두껍고 재미없는 책들이라 무엇보다 독서가 ‘재미’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업 시간에 읽었던 여러 가지 책들은 어땠느냐고 물으니 그 책들은 재미있었고 그런 책들이라면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걱정하고 계신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해주고 아이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한 독서 약속이 있는데 본인이 그걸 지키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호히 이야기했습니다. 조용해도 강단이 있는 편인 건 알았지만 속으로 꽤 놀랐습니다.
아이에게 이유가 무엇이냐, 요즘 어머니에게 서운한 점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너무 잔소리가 심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하라고 하는 것은 이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거 마냥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는 본인이 숙제나 할 일을 알아서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계속 확인하고 재촉하는 거에 많이 힘들고 지친 상황이었습니다. 반대로 어머니는 아이가 할 일을 계속 미뤄서 본인이 확인을 하고 재촉하면 그제야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할 일을 해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니 아이와 엄마는 한 지붕 아래 각자 자기 입장만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운하시겠지만 저는 아이의 편을 들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예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한창 친구들이 우선이고 너무 좋아 또래 활동에 관심이 많이 갈 시기입니다. 책 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게 맞고 그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원래 독서를 즐기고 좋아했던 아이라면 이미 독서의 재미를 알 겁니다. 지금 아이는 누군가가 시켜서, 숙제를 위해 하는 독서에 지친 상태입니다. 이런 독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이와 상담을 마치고 저는 어머니에게 아이의 마음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재미를 느낄 책을 함께 고르기, 어머니가 책 친구 돼주시기, 우선 기다려주기를 제안했습니다. 어머니도 아이가 그런 마음인 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셨습니다. 이제 공은 제 손을 떠났습니다. 제 바람도 아이가 의무로 하는 독서가 아닌 진정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찾는 겁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책 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요즘 어떤 책을 재밌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