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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Oct 29. 2023

가을의 길목에서 아동복지법 개정을 외치다.

11차 집회를 다녀와서

 저는 어제 제11차 교사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방학 전 서이초 막내 교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집회가 어느덧 가을까지 계속됐습니다. 집회 참여 필수품이었던 얼음물과 아이스팩이 따뜻한 물과 겉옷, 그리고 담요로 대체되는 걸 보니 새삼 시간은 무심히도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스팔트를 끓게 만들던 햇살아래 나무마다 푸른 잎으로 가득 찼던 여의도 공원 일대는 이제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었습니다. 선선한 바람에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그 낙엽이 사그락거리며 굴러다니는 그야말로 완연한 가을이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계절의 주말인 어제도 12만이 넘는 선생님들이 여의도에 모였습니다. 그동안 교사들이 주말과 방학도 반납한 채 한 목소리로 외친 결과 지난달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장하는 ‘교권 보호 4 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교원보호책이 마련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학대 혐의를 받게 된 교사가 하루 한 명 이상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 집회에서도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챙겨야 한다고, 교실에서는 휴대폰을 울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지도한 결과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동료교사가 있었습니다. 10년 전 가르친 학급에서 친구를 욕하고 때리는 학생을 교사가 모욕했다며 이제야 고소를 당해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 동료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2014년 개정된 아동 복지법에 의해 아동이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가 유지되고, 성년 이후에 공소시효가 재개되어 성인이 된 후 7년이 지나야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1학년 담임을 맡았다면 그 학생이 만 26세 가 될 때까지 약 20년 동안 고소의 위험을 안고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족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에는 유효한 법률일 수 있으나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에게 이 같은 법 적용이 상식적으로 옳은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현재 교사 노조에서는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 정서적 학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업무를 대리하고 계신 변호사님도 어제 집회에 참여하셨습니다. 변호사님의 절규 섞인 발언 중 공감됐던 부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학교가 사람을 가르치고 키우는 곳이 아니라 죽음의 장이 되어버린지 벌써 10년이 되어갑니다. 단 10년 만에 학교가 이렇게 변했는데 국가는 또 국민은 그저 둔감하기만 했습니다. 다들 자신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을 생각하며, 여전히 선생님들에게 참아라 가해학생들의 교화가 중요하다. 피해학생들에게 용서해라 화해해라 가해학생도 인권이 있다 아동의 인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아동에게 말하는 모든 것이 학대라고 떠들어댔습니다.      


학교는 망했습니다. 철저히 망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작 교권 4 법 정도 통과시키고 이 정도면 됐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부터 절망적입니다. 이 모든 문제는 학교의 문제를 법적 문제로 치환하면서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음에서 시작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악법은 선생님들의 훈육과 지도행위를 원천봉쇄하는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 정서적 학대 조항입니다. 헌법소원을 제기할 새로운 청구인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법을 입법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서적 학대 조항이 개정되거나 폐지되어도 아동에 대한 신체적 학대를 비롯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학대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여전히 남아있고, 이를 통해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방지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임금도 복지도 휴가도 아닙니다.(2024년, 무려 20년 만에 담임수당 월 7만 원, 부장수당 8만 원을 인상해 준다고 합니다. 담임수당 2배, 부장수당 100% 인상이라는 엄청난 말장난에 감탄합니다.) 그저 마음 놓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비정상적인 아동학대 및 학교폭력 신고 시스템 아래 선량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학교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갈 길이 아직 멉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연대를 통해 무너져버린 학교 현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업신여길 능(凌)’, ‘하늘소(霄)’ 능소화는 무더위와 태풍, 장마를 이겨내고 하늘을 업신여기기라도 하듯이 붉은빛을 뽐내며 피고 또 핀다.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고난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다시 모인 우리는 ‘능소화’다.    


- 아동복지법 개정 촉구 집회 성명문 中 -   




* 한국일보 교권보호 조치 이후에도… 교사 하루에 한 명 이상 아동학대 신고당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67001?sid=102



집회 중 잠시 챙겨보는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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