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찾아온 목소리

에세이

by 별사람

디자인은 늘 그런 일이었다.

누군가 원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찾아내고, 그 결과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조금 더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적어도 내게 디자인은 그런 의미였다.


나는 늘 도움이 되는 인간이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디자이너로 살았다. 수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디자인이 싫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들어 나는 비로소 내 삶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일을 쉬면서 생각을 더 깊이 할 수 있었고,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곱씹을 수 있었다.

그럴수록 이제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대응했고, 남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데 익숙했다.

겉으로는 능숙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달랐다. 쏟아지는 이미지를 그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아졌고, 그 생각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나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갔다. “나는 누구인가?” 사실 이 질문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단정 짓는 건 언제나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너무 쉽게 정의하면 낭패를 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치가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었던 나, 결국 그래서 디자이너라는 길을 걸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시를 만났다.

내게 시는 또 다른 목소리였다. 하고 싶은 말을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됐고,

짧은 문장 속에 함축해서 담아낼 수 있었으며, 읽는 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디자인과 닮아 있었지만, 동시에 훨씬 더 자유롭고, 더 큰 힘을 가진 무엇이었다.


우연이 겹치고 인연이 이어지면서 나는 지금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믿기 어려운 시작이지만, 분명 새로운 출발이었다.

시를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다시 시를 쓰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 같은 것이 만들어진 듯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축복은 소박하다. 시를 쓸 기회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 내 글을 향해 욕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고, 좋아해 주는 이들까지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시를 쓰는 일이 직업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친구가 이미 내 인생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평생 내 곁에서 나를 웃게 해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부끄러움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시를 써본다.


keyword
팔로워 68
작가의 이전글가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