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향한 무심은, 결국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아무래도 이상해 보이지만, 모른척 한다.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지만, 모른척 한다. 타인의 일이니까. 혹여 귀찮아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편해지기 위해서 선택한 이 무심이, 점차 자신을 옥죄어 온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랬더라면. 그렇게 모든 IF의 시작은 그리하여, 비극의 시작점이 된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에 수록된 여덟편의 단편을 읽고 내 마음을 관통한 단어는 '무심함' 이었다. 예를들어 첫번째 작품 [양의 미래]의 경우는 일터에서 목도한 어떤 이상한 풍경에의 무심으로 인해 시작된 만약, 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상류엔 맹금류]의 경우는 반대로, 무심히 지나쳤으면 좋았을 사실을 부러 입 밖으로 내뱉음으로써 시작된 만약, 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웃는 남자]의 경우,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무심히 지나쳤던 한 여름 길가에 쓰러진 노인의 생명에, 만약 내가 어떤 조치를 했었더라면, 가장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무심히 지나쳤던 한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게 되고, 또다시 만약을 생각한다. 아무도 아닌 사람들에대해 무심했던 순간들에 만약에, 를 덧붙이게 되는 순간. 아무도 아니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아닌게 아니게 된다. 나는 여덟편의 소설에서 이러한 부분이 유독, 신경이 쓰였다.
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 틈에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다.
못견딜 정도로 수치스러울 때는 그 장소을 떠난 뒤 돌아가지 않는데,
그런 일은 물론 자주 일어나지를 않는다.
다음에 다른 동네로 이사을 가게 되면
그 동네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많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카시아가 단 한 그루도 없는 동네에 살게 되더라도
나는 별 불편 없이 잘 적응해갈 것이다.
수많은 무심의 순간들을 우리는, 아무도 아닌 사람들과 함께 스쳐보낸다. 나 자신 역시 아무도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도 아닌 채로 스쳐지나간다. 작가 황정은은 그러한 아무도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한 순간을 집어내어 아무도 아니지 아닌 사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람은 끔찍하도록 내 자신이고 내 이웃이다. 무심이 관심으로 변하는 순간, 사람들은 거친 욕설을 내뱉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다정한 관심따윈 없다. 그리고 잠시, 아무도 아니지 않게 되어버린 사람들은 그 순간에서 도망쳐, 다시금 아무도 아니게 된다. 오로지 무심의 세계에서만이 주인공은 평화롭다. 아무도 아니었을 때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 비록 마음속은 점점 제 자신의 말들로 소란스러워지고 황폐해져만가도, 겉보기에는 평화로워보이는 것이다. 무심해야 평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끔찍하다. 황정은은 그 무심한 아무도 아닌 사람들만이 평온한, 끔찍한 세계를 그려내 보임으로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아닌채여야만 평온할 수 있는 이 난폭한 세계에서 계속 무심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황정은이 내게 던진다기보다는 황정은을 읽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 이 평온함이, 이 아무도 아닌 상태가, 과연 온당한 평온함인지, 내가 내 멱살을 잡고 묻는 것이다. 누군가의 불행과 누군가의 불운, 누군가의 아픔과 누군가의 상처에 무심함으로써 얻어낸 평온함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