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결혼 장려 책을 써보겠다’ 야심 차게 나섰던 건 분명 나의 오만이었다. 우리 부부는 신혼 초부터 꽤 부지런히 살았다. 각자 달랑 천만 원씩 들고 결혼을 시작한 만큼 해나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 아니,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집을 사야 했고, 그다음은 부수입 창출이었다. 퇴근하면 다시 집으로 출근했다. 유튜브를 찍고, 함께 운동하고, 편집하고, 또 출근했다. 그렇게 우리의 바쁜 생활은 생각보다 빠르게 결실을 맺는 듯 보였다. 일주일에 한 편씩 올렸던 유튜브는 6개월도 되지 않아 구독자 1만을 넘겼고, 지상파 3사에서 각기 다른 출연 제의도 받았다. 가진 건 없었지만, 또래 친구들보다 결혼도, 집 장만도, 심지어는 임신과 출산까지 빠르게 진입했다. 그것도 꽤 요란하게.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남들보다 잘살고 있다는 생각을 넘어,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결혼 장려할 만한 표본이라도 되는 양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강렬하게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나는 결혼도, 남편도,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가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나의 경험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거 봐라, 지금 시대에도 돈 없이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다!’ 그런 훈장을 한켠에 달고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그것도 모자라 남편까지 몰아세웠다. 나는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믿어왔다. 가진 것 없이 시작했지만 우리는 대화를 통해 협력하며 잘해나가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살았다.
그 환상은 주변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너희 부부는 싸우지도 않을 것 같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제법 우쭐해하며 대답했다.
“아니 뭐, 싸울 일이 있나. 가끔 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가 달라서 토론하기는 해도… 뭐 때문에 다투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나.”
하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맨날’, ‘항상’ 같은 말을 쏟아내며 지나간 그의 치부를 끄집어 냈다. 그럼에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말하다니.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속여왔다.
결혼 4년 차, 어떤 갈등도 없는 완벽한 가정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문제없이, 갈등 없이 지난 4년을 지나온 게 아니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과 불안을 동반했고, 그것은 승자 없는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동영상 편집도, 재테크도 즐겁게만 할 줄 알았던 남편이 지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성실한 줄만 알았던 남편도 사실은 누워 웹서핑하는 시간이 가장 편하다는 걸 알았다. 부엌에 냄새가 나지 않게 하려면 매일 밤 누군가는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 정리해야 한다는 것도, 한 사람이 바깥일에 집중하면 다른 누군가는 집안일과 육아를 맡아야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평화로운 가정은 필연적으로 희생과 노력을 요구했고, 성실한 희생을 아무런 불만 없이 감당하기엔 우리는 너무 유약했다.
그럼에도 연민하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갈등의 원인을 상대에게 미루는 데에만 익숙해졌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상대의 단편들을 조합해,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변화가 필요한 대상에서 스스로는 유유히 빠져나왔다. 상대가 느낄 억울함조차 변화에 저항하는 고집이라고 단정 지었다. 제법 명료하게.
그런데 벗겨내고 벗겨내어 보니, 나부터가 그리 대단히 강인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했던 사람도, 그 변화가 힘들었던 사람도 결국 나였다.
더 이상 결혼을 쉽게 권할 수 없게 된 건, 나의 결혼 생활이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때때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행복과 안정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정이 주는 평온은 혼자일 때에 비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그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뿐인 동반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던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허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때로는 철저히 혼자가 된 듯한 외로움 속에서,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끝없는 대립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제 결혼을 쉽게 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