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무교였다
우리 시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시다.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사랑은 일상 곳곳에 녹아있다. 기쁜 일이 있을 땐 ‘할렐루야’하고 감탄하시고, 좋은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총이라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신다. 힘든 일조차도 하나님의 뜻이려니 받아들이고 감내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그녀는 일곱 자식의 이름까지도 모두 성경에서 가져오셨다. 그녀가 이날 이때껏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곱 자녀를 행복하게 키우실 수 있었던 건, 8할이 그녀의 종교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자녀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미래의 며느리와 사위들까지도.
남편은 결혼생각이 없을 때부터 그런 어머님과 종종 실랑이를 벌이곤 했었다고 했다. 자식들은 몰라도 앞으로 어머니가 맞이할 새 가족들, 그러니까 며느리와 사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부디 믿음에 대한 당신의 기대를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녀의 첫 번째 며느리가 된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남편의 이름을 통해서 충분히 예측할 순 있었다. 그는 명백히 기독교 집안이었다. 하지만 그와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주말마다 교회에 가진 않았다. 교회에 다니는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말하곤 했다. 때문에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은 우리 둘 사이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문턱에 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종교가 결혼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낀 건 상견례를 준비할 때였다. 신실한 어머님의 반대편엔 기독교의 전도 문화를 싫어하시는 우리 아빠가 있었다. 게다가 우리 아빠는 어머님이 멀리하시는 술을 사랑하는 분이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견례를 앞둔 남편과 나는 두 가지 걱정이 들었다. 하나는 어머님이 기도를 하자고 하시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아빠가 술을 마시자고 하시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좋아하시는 기도와 술을 하지 말아 달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아름 걱정을 안고 시작된 상견례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남편을 처음 본 날부터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던 아빠는 상견례 자리에서도 아들이 생겼다며 행복해하셨고, 어머님은 우리 엄마가 너무 예쁘시다며 좋아하셨다. 살짝의 긴장감과 함께 웃음이 오가던 중 식사가 준비되었고, 어머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셨다.
“제가 오늘의 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축복 기도를 올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아빠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나 나의 걱정이 무안할 만큼 아빠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계셨다.
“어유~ 예, 그럼요.”
어머님의 감사기도가 끝남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도 잠시, 이번엔 아빠가 분주해 보이셨다. 식사에 앞서 ‘짠’이 빠진 것이 영 어색하신 모양이었다.
“맥주 한 잔씩 반주 삼아 괜찮을까요?”
말릴 틈도 없이 아빠는 이미 어머님을 향해 묻고 계셨고, 고개를 돌려 어머님을 봤을 때 그녀 역시 웃으며 답하고 계셨다.
“아이고, 그럼요. 한 잔 하셔야죠.”
기도와 술의 기막히고도 평화로운 공존의 현장이었다. 우리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부모님들께서는 서로를 존중해 주셨고, 누구도 좋은 분위기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덕분에 상견례는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잔뜩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벼울이는 주례 어떻게 하고 싶어?”
결혼식 자체에 로망이 없던 나는 주례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글쎄, 요즘은 주례 없이 아버지 덕담으로 대체하지 않나? 우리 아빠는 덕담해주고 싶어 하실 것 같긴 해”
아무런 생각 없이 툭 던진 나의 말에 그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사실… 우리 엄마는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내가 아무리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고 설득해도 쉽지가 않네”
그가 울상인 이유였다. 나보다도 결혼식을 우리 스타일대로 꾸며보고 싶어 했던 그였다. 그런데 주례부터 턱 하니 막히니 기운이 빠져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 또한 계획하기도 전에 정해져 버린 식순이 이내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목사님은 오빠네 가족에게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라며, 그런 분이라면 나는 종교를 떠나서 존경하는 어른께 주례받는다 생각하고 받아도 좋을 것 같긴 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미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어머님께 점수를 깎이고 시작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던 터라 주례마저 어머님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도 진심이었다.
“내가... 목사님께서 시간이 없으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먼저 여쭤보긴 했거든? 그런데 목사님께서 시간은 빼주신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주례를 받으려면 교회에서 ‘결혼수업’이란 걸 들어야 한대... 그래도 괜찮겠어?”
신부수업도 아니고, 결혼수업은 또 뭐람. 너무도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살피는 그에게 나는 그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목사님께 날짜를 말씀드렸다 하니,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 이왕 주례받기로 한 것,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라야지!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결혼수업 날이 되었다. 막상 들으려고 하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결혼에 앞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읽어 오라고 했던 책에 대한 답변은 남편이 되도록 하자고 괜한 약속도 해가며 교회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수업을 해주실 분은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은 아니었고, 부목사님이셨다. 내 머릿속의 목사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젊고 푸근한 인상의 부목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수업의 내용도 예상보다 더 들을만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내용도 많았다. 예컨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은 자동이체를 걸어 놓으라던가 하는 실질적인 팁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흥미롭게 듣고 있던 나에게 성경의 한 구절이 가슴에 콕하고 박히고 말았다.
여자는 남자를 섬기고 순종해야 하며 남자는 여자를 존중하고 내 몸과 같이 아껴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섬기고 순종해야’ 하며…
남자는 여자를 존중하는데, 여자는 왜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지..?
이 말이 가슴에 박힌 순간, 다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리곤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목사님.. 죄송한데 저희는 그냥 서로 존중하는 걸로 하면 안 될까요? 저도 똑같이 교육받고 자랐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것을 동등하게 가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순종하려고 결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눈물에 부목사님도 적잖이 당황하신 듯 보였다.
“성경이 옛날 책이라 표현이 그럴 뿐이에요. 벼울씨가 받아들이신 대로 ‘존중’이라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부목사님은 서둘러 나를 달래주려 하셨지만, 한번 터진 눈물샘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정말 죄송한데.. 혹시 주례 말씀에도 이런 표현이 들어가야만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섬긴다는 표현만큼은 바꿔달라고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섬김 혹은 순종과는 일절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 왔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줄 알았다. 이 남자와의 결혼조차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다. 이런 나를 아는,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자는 남자를 섬기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 따위를 공표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옛날책에 나온 관습적인 문장일지라도 나의 결혼식에 울려 퍼지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머님께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서러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자리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목사님은 우리 주례사에서 ‘순종과 섬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셨다. 그리고 비기독교인이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례를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연약한 것은 도와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것은 말해주고, 특별한 것은 인정해 주자”
- 목사님의 주례사 中에서
30여 년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두 가족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탄생시키는 일. 결혼식은 하나의 관례에 불과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참 많은 ‘다름’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때로 속상한 마음을 이내 삼킬 때도 있었지만, 또 어떤 순간엔 예상치 못하게 환대받을 때도 많았다. (지금도 어색한) ‘공주’라는 표현을 어머님께 생전 처음 들어보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이토록 자연스러워진 것도 어머님 덕분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예식을 두 가족이 함께 준비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지나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예비군 훈련으로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님께서 아이들을 함께 봐주시려고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남편 없이 어머님과 단둘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처음이었다. 그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다 어머님은 갑작스레 하소연하셨다.
“아들은 아직까지도 나더러 주례를 강요한 것을 사과해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한다.”
남편이 나도 모르게 어머님께 그런 이야길 하고 있었구나. 처음 듣는 남편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는 데, 어머님이 말씀을 이어 가셨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주례는 목사님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일생의 가장 큰 약속을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는 데 있어 목사님의 축복이 있어야만 한다고 엄마는 생각해.”
주례가 어머님께는 굉장히 큰 의미였구나. 어머님이 이해되는 한편, 남편이 왜 아직까지도 사과받고 싶어 하는지 이해시켜 드리고 싶었다.
“오빠는 아마도 동생들이 걱정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아직까지 결혼한 건 저희밖에 없는데, 앞으로 동생들이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저의 경우는 주례해 주신 목사님을 종교를 떠나서 존경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고, 저희 부모님 또한 감사하게도 받아들여주셨지만, 기독교가 아닌 집안은 충분히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쩌다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말을 덧붙였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제가 종교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머님께 사랑받지 못할까 봐 굉장히 속상했었거든요. 어머님의 가장 큰 꿈이 우리 모두가 교회에 가는 것인데, 저 때문에 그 꿈을 이루지 못하실 것 같아서요. 그게 결혼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었어요.”
내가 너무 내 진심을 내비쳤나 순간 멈칫했다. 아무리 아들과 비종교인에 대해 이야길 나눠왔다 한들, 어머님도 실제 비종교인인 며느리의 속내를 마주하신 건 처음이셨을 것이다. 그동안 많이 가까워지고, 또 좋아해 주셨다 해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일 텐데, 종교적인 신념이 인생의 전부인 어머님께 괜히 밉보인 건 아닐까. 짧은 사이 많은 생각이 스쳤다.
“아이고 벼울아, 나는 전혀 몰랐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자식들도 내 뜻대로 안 되는 데, 그건 나의 소망일 뿐이야. 그리고,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너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단다. 너는 이미 나의 자녀야.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고. 너는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마음은 당장 털어버렸으면 좋겠구나.”
어쩌면 어머님도 며느리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셨던 걸까. 어머님께 갑작스레 나의 마음을 고백해 버린 그날, 나는 어머님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더 크게 이해받게 되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구나 하고 느낀 그날, 나는 어머님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