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당연한 사회를 꿈꾼다
“오, 축하! 부모님께서 지원을 많이 해주셨나 봐.”
내가 결혼과 함께 집을 구했다는 말에 상무님이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 딱 인테리어 비용 대 주셨어요. 나머지는 다 저희 부담이에요. 물론 대부분 대출이지만요.”
부모님께 지원받았다고 오해받는 게 뭐 대수라고, 나는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내가 부자라고 오해받는 것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내 노력이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싫었다. ‘괜히 오버했나?’ 불편한 마음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다 큰 성인이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이 우리 사회에선 왜 이토록 당연한 일일까?
사실, 상무님의 오해는 이해할 만했다. 요즘 같은 집값에 사회초년생이 내 집을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024년 초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7억 원을 넘어섰고 서울은 12억에 육박했다. 맞벌이 부부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수도권 평균가에 닿으려면 9년, 중위소득으로 계산하면 14년이 걸린다. 물론 그 계산엔 전세 이자나 월세, 생활비가 빠져 있다. 결국 평범한 30대 부부가 대출이나 부모의 지원 없이 집을 마련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결혼할 때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의 평균 자산은 4억 8천만 원, 중앙값은 2억 1천만 원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다. 절반 이상의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38.1%. OECD 최고 수준이다. 부모 지원은 커녕, 오히려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자녀가 더 많은 형국이다.
그러니 결혼을 미루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이에 대해선 0.78의 출산율과 함께 낮은 혼인율의 수치가 이미 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혼수비용·주거 마련 등 결혼자금이 부족해서’라는 응답이 20~30대 미혼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출처: 통계청 ‘한국의 사회 동향 2023’).
그래도 요즘은 정부 지원이 많잖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신혼부부를 위한 각종 정책들이 신설되거나, 확대 적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공공주택 특별공급 시 맞벌이 부부에겐 허들이 되었던 소득기준이 상향되었고, 부부 중복 당첨도 허용되었다. 또한 배우자 청약통장 가입기간 및 가점 일부를 합산할 수 있는 등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조건이 일부 완화되었다. 결혼자금을 양가에서 증여받을 시 3억까지 증여세가 공제되며, 아이를 낳으면 신생아 특별공급 및 신생아 특례대출도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작년에 아이를 두 명이나 출산한 우리 부부는 이 수많은 지원 정책 중 어느 하나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육아휴직 지원금 최대 3,900만 원이라는 문구는 화려했지만, 실제로 그만큼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부부는 정확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부모에게도, 정부에서도 지원받지 못했다. 정부에서조차 양가 부모로부터 1억 5천만 원 정도씩은 충분히 증여받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정책이 적절하게 짜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가 ‘헬조선’이라며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우리 삶은 단 한 발자국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안에서 살아갈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자금을 충분히 보태주지 않았다며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올바르게 키워주셨고, 나는 나름 재미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사업이 휘청거리고, 집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힘든 시기를 겪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우리를 부족함 없이 키워주시려 최선을 다하셨다. 그런 노력 끝에 두 딸은 모두 취업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그제야 매우 편안해지셨다. 이제 막 편안해지신 부모님께 나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마다 양손 가득 반찬을 챙겨주시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건 시댁도 마찬가지다. 우리 시어머니는 지금까지 일곱 남매 모두를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사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별거 아닌 식사 한 끼, 꽃다발 하나, 기껏 매달 10만 원씩밖에 드리지 못하는 용돈에도 매번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좋아해 주시는 모습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오늘도
일흔을 앞두고 "집에 있으면 더 피곤하다"며 일을 나가시는 시어머니,
남은 대출을 갚기 위해 1인 사업장을 지키는 아버지,
출퇴근이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며 매일 9시에 나서는 어머니.
이 나라엔 여전히, 환갑을 넘어도 밥벌이를 멈출 수 없는 부모들이 많다. 그들이 자신의 노후를 미루고 자녀의 집을 사주는 일의 당연해져서는 안된다.
물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더 바라는 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수조건'이 아닌 사회. 부모의 도움 없이도 가정을 꾸릴 수 있고, 그런 이들이 더 자랑스러운 사회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바란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저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길.
주석 1. 아파트 매매 평균 가격 추이
주석 2. 2023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은 1인 가구 기준 대략 335만 원이다. 중위소득으로 보면 208만 원으로 더 낮아진다.
주석 3. 60세가 넘어서도 자녀 돌봄의 끈을 놓지 못한 부모들이 너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