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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울 Mar 19. 2024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칠 남매 장남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

솔직히 네가 가볍게 만나다 헤어졌으면 좋겠어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단짝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자리. 서로에게 새로 생긴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신이나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빤히 보기만 하던 그녀는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 가난한, 칠 남매, 장남이라는 내 남자 친구 앞에 붙은 수식어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축하받고 싶어 말한 자리에서 헤어지면 좋겠다니. 나도 속상해 그 자리에서 같이 울어버렸다. 친구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칠 남매 장남이라는 이야길 처음 듣고, 그 자리에서 대놓고 결혼은 힘들겠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친구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그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 사내 CC(Company Couple), 그것도 친한 동기 모임 내에서의 만남이었다. 금방 헤어질 거면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배려심이 깊었고, 공감 능력이 뛰어났고, 나와 가치관도 잘 맞았다.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던 나는 백과사전 같은 그와 대화하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았다. 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남자였고, 그와의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진짜 그와 결혼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가난은 나에게 흠이 되지 않았다. 32살, 나와 함께 신입으로 들어온 그가 모아둔 돈이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학자금 대출이 없는 게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자산이 없다는 것 또한 내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피차일반이었다. 그와 나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닐뿐더러, 사치 부리지도 않았다. 앞으로 함께 모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덕에 생활력도 강했다. 그는 당장 직장에서 잘리더라도 막노동을 해서라도 생계를 이어갈 의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공사장까지 갈 필요 없을 만큼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당장 결혼해도 굶어 죽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에 ‘턱’ 하니 걸려있던 건 그가 칠 남매, 그것도 장남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장남’의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원가족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책임감 강한 효자. 거기엔 ‘맏며느리’의 이미지도 함께 달려온다. 차례, 제사, 명절 등 가족 행사를 도맡아 챙기며, 책임감 강한 남편을 적극 서포트하는 태평양 같은 마음씨를 가진 일꾼. 이런 이미지를 선점하지 못한 맏며느리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듯했다. 시부모를 포함한 형제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외면하며 살기. 혹은 내가 먼저 시댁 식구들을 욕하고 이들과 거리 두지 못하는 남편을 탓하며 바가지 긁으며 살기. 혹은 한평생 내 편이 되지 않는 남편을 옆에 두고 외롭게 살아가기. 어쩌면 모두.


나의 편견에 불을 지피는 사례는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장남과 결혼해 20년간 맏며느리 노릇을 하다 얼마  전 시댁과 완전히 거리두기 시작하신 차장님이 있었고. 사업에 실패해 돈은 못 벌어도 동생들 뒷바라지는 해야 한다며 꼬박꼬박 어머니 돈을 가져가신다던 친구의 아버님도 있었다. 고부갈등에 이골이 나서 가족들과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 할머니 임종이 다 돼서야 마음을 풀어주신 우리 큰 외숙모도 빼놓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사례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내가 과연 그들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의 걱정을 비웃듯 그의 가족 카톡방의 알림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너무나도 화목하고 끈끈한 가족이었다.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걱정은 예상치 못한 데서 단 하룻밤 만에 ‘뚝’ 하고 끊어졌다. 당시 나는 회사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룸메이트 언니와 함께 살았다. 지사에서 직무 전환되어 본사로 올라온 언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언니와 자기 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다. 어떤 말을 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피드백이 돌아오는 순간들이 특히 좋았다. 우리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결혼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침대에 불을 끄고 누워 언니에게 그와 결혼을 고민하는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언니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벼울아,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빠랑 결혼이 하고 싶어?”

“오빠는 배려심이 정말 깊고 공감 능력도 뛰어난데,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해. 게다가 오빠랑 온종일 떠들어도 질리지 않아. 맨날맨날 같이 수다 떨고 싶어.”

“근데 있잖아, 네가 말하는 배려심, 공감 능력, 성실함, 책임감 모두 오빠가 칠 남매 장남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 아닐까?”


언니의 말이 맞았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그의 장점과 단점은 결코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여섯 동생들과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배려심을 터득했고, 사랑하는 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감 능력을 강화하였으며,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가난 속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지금껏 성실하게 지내왔다. 그의 지금의 모습은 모두 그의 가족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너무나도 화목하고 끈끈한 가족’, 그것은 그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생각의 회로가 뚝하고 끊어지더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가난한 칠 남매 장남, 그것은 그의 장점이었다.


그 후에야 비로소 그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똑 닮은 동생들은 그보다도 지독하게 장남인 그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형(오빠)의 인생에 우리가 걸림돌이 되면 안 돼’하고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보였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막내조차도 큰오빠에게 작은 짐도 얹지 않으려 했다. 예를 들어, 그가 막냇동생에게 스마트 폰을 사주면 그것을 3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갚는 식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그 정도는 그냥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해도 그들은 완고했다. 가난한 집 칠 남매가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은 이토록 지독했다. 그렇게 새로운 길 위에 듬성듬성 남아있던 작은 돌멩이들 마저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그의 가족들이 말끔히 치워버렸다.




사람에겐 누구나 단점과 장점이 있다. 그런데 유독 결혼이라는 카테고리 앞에만 서면 단점이 없는 완벽한 배우자와 만나기를 꿈꾸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했고, 나를 걱정하던 수많은 주변인들이 그러했다. 그러다 보니 쉽게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턱 하니 막혀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가 완벽한 결혼 상대가 아니라서 헤어졌다 한들 내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다시 기회를 얻어 또 다른 누군갈 만나도, 나는 그의 단점을 어떻게든 찾아내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내가 그와 결혼을 결심하기 위해서 바뀌어야 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상대의 부족한 점조차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나는 그와 행복한 미래를 진심으로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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