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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울 Mar 05. 2024

결혼? 언젠가 할 수도 있겠지, 좋은 사람 만나면

프롤로그

내 남편은 비혼주의자였다. 결혼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함께할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


사실 그가 가진 조건은 대한민국 결혼 시장에서 결코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서른두 살에 첫 직장을 가져 모은 돈이라곤 달랑 천만 원, 게다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7남매 장남. 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만한 여자는 많지 않으리라.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땐 연애라도 해보려 노력한 적도 있었다 했다. 다만, 등록금과 생활비 벌기도 빠듯한 시간에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그를 붙잡았다. 그렇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하지 못한 채 서른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이쯤 되니 혼자가 더 편해졌다.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느니 혼자만의 삶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결혼, 안 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나에게 있어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만났던 모든 사람과 결혼을 상상했다. 연애 초반의 달콤한 꿈은 몇 달 지나지 않아 깨지곤 했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새롭게 결혼을 꿈꿨다. 나에게 있어 연애의 끝은 이별 아니면 결혼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향한 나의 굳은 의지와는 다르게 숱한 연애의 마침표는 모두 이별로 끝나버렸다. 이별이 거듭될수록 결혼을 위한 조건만 더해갔다. 결혼,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회사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대번에 느꼈다.


‘나랑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군’ 


당시 나는 스무 명 남짓의 신입으로 구성된 팀의 팀장이었고, 그는 대졸 채용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팀원이자 사진 담당이었다. 나는 앞장서서 큰 목소리로 팀원들을 이끌었다면, 그는 제일 뒤에서 팀원들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았다. 분명 같은 팀이었지만 심리적, 물리적 거리 모두 멀었다.


그의 존재를 처음 제대로 인식한 건 연수 기간이 모두 끝난 팀 뒤풀이 장소에서였다. 뒤풀이 장소에 막 도착할 무렵, 우리는 그날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팀원이 가는 길에 접촉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고당한 동기는 서울로 상경해 자취 중인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동기였다. 부모님도 멀리 계시는데 놀랐겠다 싶어 나는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고, 같은 직무라 제일 먼저 연락을 받았던 그도 뒤따라왔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뒤차가 자동차 후방을 갑작스럽게 박으면서 고개가 젖혀졌다고 한 게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사고당한 동기와 함께 바로 응급실에 갔고, 그에게 식당에 두고 온 짐을 부탁했다.


한참 있다가 병원에 도착한 그는 평소와 다르게 당황한 듯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벼울아, 정말 미안한데… 내가 네 회사 노트북을 버스에 두고 내린 것 같아. 내가 이런 실수 잘 안 하는데, 어쩌다가 두고 내렸는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챙긴다고 정신없었는데, 하필 너의 노트북을 두고 내리다니…! 바로 찾으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라도 못 찾아서 값을 물어야 하면, 내가 물도록 할게. 일단 내 노트북을 네가 가져가서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 미안해.”


그는 속사포로 상황을 전하고는 함께 사 온 물과 함께 본인의 노트북을 나에게 쥐여줬다. 매사 신중하고, 과묵해 보였던 그도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어색하게 허둥대는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괜찮아, 괜찮아. 노트북 하나 잃어버렸다고 잘리기야 하겠어. 상황을 말씀드리면 이해해 주실 거야. 여차하면 나도 보탤 게 너무 걱정 마~”


괜찮다는 나의 말에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던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후로도 한참을 지나서 밤 열한 시쯤 되었을까. 버스 종착지에서 분실물 신고가 들어온 노트북을 찾았다며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차분해진 목소리로 상황을 전하고는 재차 사과하고 노트북을 교환할 날을 잡았다.


‘보기보다 더 선하고, 좋은 사람이구나.’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남편의 첫인상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남편도 그날, 소식을 듣자마자 신고 있던 구두를 손에 들고 망설임 없이 뛰어가던 내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분명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으로 이어졌냐고?


아니, 천만에.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일 뿐!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서로에게 일말의 이성적 호감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당시 흔히 이야기하는 ‘썸남’까지 있었으니, 이어질 리 만무했다. 결혼, 다들 좋은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좋은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결혼은커녕 연애의 시작조차 쉽지 않다. 우리가 그랬듯.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 사전 조사(115명의 성인 대상 결혼 출산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 첫 질문으로 결혼에 대한 의지를 물었다. 37.4%의 기혼자를 제외, 52.2%가 언젠가 결혼할 것이라고 답했다.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사람은 10.4%,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혼인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연일 걱정하는 미디어 속 사회와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결혼했거나, 하고 싶은 사람이 90%나 된다고? 그렇다면, 그 의지가 현실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아차 싶었다.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였다. 우리도 결혼하기 전까진 ‘언젠가 결혼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지. 심지어 남편은 비혼주의에 가까웠다. 맞다. 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게 결혼이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인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은 돈이 각자 천만 원뿐이었던, 심지어 한 사람은 비혼주의자였던 우리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결혼했고, 또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연애의 시작부터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인 육아 현장까지의 여정을 반추하려 한다.


반짝이는 결혼식, 혹은 우아한 육아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가차 없이 덮어 주셔도 좋다. 가진 것 없이, 어딘가 조금씩 부족했던 둘이 만나 함께 부딪히고, 직접 경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 없다. 여전히 서툴고, 또 부족한 우리지만, 오늘도 두 손 꼭 맞잡고 한 발씩 나아가는 중이다. 결혼과 출산을 꿈꾸지만, 돈이 없어서 혹은 아직 부부/부모가 될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고민하는 이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총 115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돌렸다. 모수는 적지만, 최대한 다양한(성비, 연령대, 학력 등)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비: 남 47.8% 여 52.2%,

연령대: 20대 32.2% 30대 52.2% 40대 9.6% 50대 2.6%, 60대 3.5%

최종학력: 고등학교 이하 7.8%, 전문학사(2~3년제) 5.2%, 학사(4년제) 69.6%, 석박사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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