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남매 장남은 연애부터 힘들다

사랑은 조건이 아닌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by Stella Note

그의 이야기


그는 가난한 칠 남매 장남이었다. 아홉 식구의 숨이 얽힌 방 안에서 '나만의 공간'이라는 말은 사치였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동생들의 숨소리와 전등 불빛을 보며 그는 종종 생각했다.

'언젠가 내 방의 불을 내가 끌 수 있는 날이 올까'


스무 살 무렵, 아버지마저 아프시기 시작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절망했고, 한동안 방황했다. 하지만, 그조차 그에게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의 방황이 여섯 동생들에겐 더 큰 절망으로 다가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공부하기 시작했고, 24살,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간다고 갑자기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것도 없던 돈이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돈이 많을수록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아지는 거였구나.’ 그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동기들은 대학 등록금은 물론 용돈까지 받으며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외활동, 어학연수 같은 스펙들은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했다. 그에겐 그 모든 것이 사치였다. 학교생활을 소화하기에도 충분히 벅찼다. 남들은 스펙에 스펙을 더하는 시간을, 그는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가득 채워야 했다. 그런 그에게 대학 시절의 풋풋한 연애 따위가 자리 잡을 틈은 없었다.


졸업 후 장교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정기적인 수입이 생겼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나만의 공간’도 생겼다. 다섯 평짜리의 방 하나. 퇴근 후 그 방의 불을 켜는 순간이 좋았다.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에어컨의 쾌적함이 어쩐지 인생의 온도를 바꿔놓을 것만 같았다. 수입은 적었지만 취미생활도 조금씩 할 수 있던 그 시간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처음 가지게 된 혼자만의 시간은 달콤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해지고, 익숙함이 때때로 지겨움으로 변해갈 때쯤 그는 그제야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용기 내 나가게 된 소개팅 자리에서 그는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그에겐 소개팅 자리에서 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었다는 것.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조차 가본 적 없었고, 대학 시절 맛집 탐방 같은 소소한 취미조차 즐길 돈이 없었다는 것이 이렇게 엉뚱한 데서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처음 본 사람에게 지난한 개인사를 털어놓으며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이 죽일 놈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욕할 순 없지 않은가.


‘아, 나는 소개팅으로 사람을 만나긴 글렀다.’ 몇 번의 소개팅 끝에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렸다고 했다. 마음속 한구석에선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올라오는 외로움 때문에 연애를 위한 노력을 하기엔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히 좋았다. 온종일 영화관에서 5~6편 영화만 봐도, 밤새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과거를 이해해 주기 바랄 필요가 없었다. ‘혼자 살고 말지, 뭐…’


그즈음 장교 생활은 끝났고 그만의 공간도 다시 사라졌다. 어느새 서른이 넘어버렸다. 다행히 블라인드 채용은 그의 늦은 나이를 지워줬다. 하지만 그나마 하나 있었던, 그의 노력으로 얻어낸 대학의 네임벨류 마저 지워버렸다. 스펙 하나 없이 학교생활만으로 가득한 자소서. 그는 그것을 들고 승부를 봐야 했다. 다시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서른두 살의 여름, 그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연수원의 낯선 공기 속에서 우리가 만났다.




우리의 이야기


그가 불쑥 자신이 칠 남매를 가졌다고 고백한 건, 신입사원 연수 기간 동안 있었던 수많은 팀 뒤풀이 날들 중 어느 날이었다. 이 시대에도 칠 남매가 있다니!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이 그중 장남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장남이라고?

와… 오빠 결혼하기 힘들겠다…!


지금 생각하면 무례하기 그지없는 말을 나는 툭 하고 내뱉고 말았다. 그는 내가 편견이 없는 탓이라고 감싸곤 하지만, 내가 제일 잘 안다. 배려가 없었다.


맞아. 쉽지 않을 것 같아. 나도 별생각 없기도 하고.


나중에야 들었지만, 당시 그는 이미 이성에게 큰 관심이 없는 상태였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면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말했노라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린 서로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서로에게 처음 매력을 느낀 건 4개월이나 지난 어느 겨울날이었다. 우리 팀은 그 후로도 종종 같이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연수가 끝나고도 활발한 단체 채팅방을 유지하는 유일한 팀이 되어있었다. 그날 우리의 만남도 바로 이 채팅방에서 시작됐다.


그날은 이전에 함께 연극을 하던 지인이 이태원에 작은 와인바를 열어, 내가 술을 팔아주겠다고 큰 마음을 먹고 간 날이었다. 나의 지갑 사정도 그다지 여유롭진 않았지만, 왜인지 응원하고 싶은 탓에 와인부터 안주까지 무리하게 주문을 해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문은 넣었고, 사장님은 바빴고, 음식과 술은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 채팅방에 말을 꺼냈던 것이었다.


“이태원 올 사람?”


저마다 자신이 바쁜 저녁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는 사이, 신촌 방향으로 올라가던 그가 대답했다.


“신촌 홍대 인근에서 불렀으면 갔을 텐데 ㅎㅎㅎ”

“(신촌에서) 이태원 짱 가깝다?”

“멀던데”


장난스럽게 대답한 그가 톡을 덧붙이기도 전, 다른 동기들이 장난 삼아 말들을 보탰다. 너무한다. 엎어지면 코 닿는데 안가네. 나였으면 갔다. 마음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 듯 등등. 올 생각이 없는 동기들의 허황된 말장난을 보며 웃고 있는데, 개인 톡이 ‘까똑’하고 울렸다.


“길게는 못 가도 들를 수는 있는데, 가? 방해하는 거 아니고?”


그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서둘러 가게 주소를 보냈다. 그제야 문득, 단 둘이 보는 건 오늘이 처음 아닌가? 어색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휴.. 다행이다. 마주 보는 테이블은 아니군.’


어색할까 걱정했던 순간이 무색하게, 그와의 자리는 금방 편해졌다. 일찍 가야 한다고 했던 그도 즐거웠는지, 오래도록 함께 있었다. 그날 했던 대화가 모두 기억나진 않는다. 그 와중에 딱 하나,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꿈’에 관한 이야기였다.


“보통 가난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유혹에 노출돼. 가난했던 나 또한 발 한번 삐끗하면 망가진 삶을 살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항상 해왔거든. 난 티끌 하나 차이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가난 속에서도 우리 칠 남매를 어떻게든 교육시켰던 어머니 덕이지. 그런데 그런 좋은 어머니를 가진다는 건 순전히 운이야. 난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런 어머니조차 가지지 못한 더럽게도 운이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어”


그의 말은 담담했다. 가난했던 시절을 말하면서도, 원망이나 부끄러움이 묻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저 '운이 좋았다'는 말로 모든 시간을 정리했다. 나는 그 담담함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가난을 지나온 사람이라기보다, 그 시간을 단단히 정리한 사람 같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난이 그를 망가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도 비슷한 종류의 강인함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닮았다고 믿었다. 그날 이후, 그의 말이 자주 떠올랐다. 조용하고, 단단했지만 어쩐지 슬펐다. 나는 그 슬픔의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조차도 그답다고 생각했다.


그날, 내 안의 아주 작은 무언가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살면서 가장 큰돈을 한 번의 술자리에 써버린 그날, 나는 값비쌌던 그의 마음도 함께 샀다. 내 인생 최고의 소비였다.


단 둘이 처음 만난 그날, 그가 남겨두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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