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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울 Apr 02. 2024

결혼하면 부모님은 얼마 해주실 수 있대?

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당연한 사회를 꿈꾼다

“오, 축하! 부모님께서 지원을 많이 해주셨나 봐. 좋겠네 벼울대리”

내가 결혼과 함께 집을 구했다는 말에 상무님이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 딱 인테리어 비용 대 주셨어요. 나머지는 다 저희 부담이에요. 물론 대부분 대출이지만요.”

부모님께 지원받았다고 오해받는 게 뭐 대수라고, 나는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내가 부자라고 오해받는 것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내 노력이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싫었다. ‘괜히 오버했나?’ 불편한 마음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다 큰 성인이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이 우리 사회에선 왜 이토록 당연한 일일까?


사실, 상무님의 오해는 충분히 이해된다. 요즘 같은 집 값을 사회 초년생들이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2024년 2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7억을 상회했으며, 서울의 경우 12억 가까이 된다. (주1)

맞벌이 부부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둘의 소득을 9년 가까이 모아야 수도권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이 조차도 중위소득으로 계산하면 14년이 걸린다. (주2) 하지만, 여기엔 돈을 마련하는 시간 동안 지불해야 하는 전세 이자나 월세 등의 주거비용과 각종 생활비에 대한 계산이 빠져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평범한 30대 성인이 결혼하면서 대출이나 부모님의 지원 없이 스스로 집을 마련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결혼할 때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걸까? 23년 기준 평균 초혼 나이가 남자 34.0세, 여자 31.5세 임을 감안하여 그 부모의 나이를 추측해 보면 대부분은 60대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 기준 60세 이상의 평균 순자산은 4억 8,630만 원이다. 이것만 보면 ‘어라? 생각보다 돈이 많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평균의 함정이다. 중앙값을 보면 2억 1,593만 원으로 뚝 떨어진다. 이 조차도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굉장히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절반 이상의 부모는 당신이 살 집을 제외하고, 노후까지 고려하면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38.1%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부모 지원은커녕 역으로 지원이 필요한 부모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돈이 없거나, 돈이 없는 부모조차 없는 사람들은 결혼을 꿈꿀 수 없는 걸까? 이에 대해선 0.78의 출산율과 함께 낮은 혼인율의 수치가 이미 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 연령별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보면, 20대 32.7%, 30대 33.7%, 40대 23.8%가 ‘혼수비용·주거 마련 등 결혼자금이 부족해서’를 가장 많이 꼽고 있다(출처: 통계청 ‘한국의 사회 동향 2023’).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돌렸던 설문조사('결혼? 언젠가 할 수도 있겠지, 좋은 사람 만나면'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다)에서도 ‘결혼을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61.7%의 응답자가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적어도 결혼하는 데 있어서 부모의 충분한 지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건 사실인 듯하다.


그래도 요즘은 정부에서 신혼부부들한테 지원 많이 해주지 않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신혼부부를 위한 각종 정책들이 신설되거나, 확대 적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공공주택 특별공급 시 맞벌이 부부에겐 허들이 되었던 소득기준이 상향되었고, 부부 중복 당첨도 허용되었다. 또한 배우자 청약통장 가입기간 및 가점 일부를 합산할 수 있는 등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조건이 일부 완화되었다. 결혼자금을 양가에서 증여받을 시 3억까지 증여세가 공제되며, 아이를 낳으면 신생아 특별공급 및 신생아 특례대출도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작년에 아이를 두 명이나 출산한 우리 부부는 이 수많은 지원 정책 중 어느 하나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하고 있지만, 최대 39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는 ‘6+6 부모육아휴직제도’의 최대한도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 부부는 정확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부모에게도, 정부에서도 지원받지 못했다. 정부에서조차 양가 부모로부터 1억 5천만 원 정도씩은 충분히 증여받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정책이 적절하게 짜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가 ‘헬조선’이라며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우리 삶은 단 한 발자국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안에서 살아갈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자금을 충분히 보태주지 않았다며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올바르게 키워주셨고, 나는 나름 재미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사업이 휘청거리고, 집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힘든 시기를 겪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우리를 부족함 없이 키워주시려 최선을 다하셨다. 그런 노력 끝에 두 딸은 모두 취업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그제야 매우 편안해지셨다. 이제 막 편안해지신 부모님께 나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마다 양손 가득 반찬을 챙겨주시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건 시댁도 마찬가지다. 우리 시어머니는 지금까지 일곱 남매 모두를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사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별거 아닌 식사 한 끼, 꽃다발 하나, 기껏 매달 10만 원씩밖에 드리지 못하는 용돈에도 매번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좋아해 주시는 모습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쉬고 있으면 좀이 쑤신다며, 오늘도 일을 나가시는 우리 시어머니.

남아있는 주택담보 대출을 갚아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마련하겠다며, 이제는 아빠 밖에 남지 않은 1인 사업장에 꼬박꼬박 출근하시는 우리 아빠.

이 나이가 되니 집에서 쉬는 것보다 출퇴근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게 더 좋다며, 매일 9시 병원으로 출근하시는 우리 엄마.(엄마는 간호사다)


우리 부모님과 같이, 환갑을 넘어서도 여전히 밥벌이를 해야만 하는 많은 부모가 있다. (주3) 그들이 당신의 노후는 제쳐둔 채 자녀에게 집을 사주고, 손주 학비를 부담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 형편이 넉넉한 부모를 만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부모로부터의 지원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가기에 문제가 없는 사회, 그리고 그런 이들이 더 자랑스러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저 조금이라도 더 건강히,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 계셔 주시길 바란다.




주석 1. 아파트 매매 평균 가격 추이


주석 2. 2023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은 1인 가구 기준 대략 335만 원이다. 중위소득으로 보면 208만 원으로 더 낮아진다.


주석 3. 60세가 넘어서도 자녀 돌봄의 끈을 놓지 못한 부모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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