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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울 Apr 30. 2024

1만 유튜버가 되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그만두었다.

평범한 우리 부부가 6개월 만에 1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빚이 생겼다. 2020년 부동산 폭등 시기, 남편과 나는 결혼도 하기 전 덜컥 집을 구매했다. 사회초년생이자 물려받을 자산도 없었던 우리에게 대출은 내 집 마련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초저금리 시기, 대부분 고정금리로 받았던 대출이 맞벌이인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결코 여유롭지도 않았다. 생각 없이 쓰다 보면 이자 내는 날이 걱정되지만, 잘 관리하면 조금씩 돈을 모아갈 수 있을 정도. 여유롭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 정도였다. 문제는 우리가 평생 이 좁은 집에 살 순 없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아이가 생기면, 예상치 못한 지출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는 거였다. 이때부터 우리 부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월급 외에 부수입을 마련할 수 있을까’가 되었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서 다뤘다.)

https://brunch.co.kr/@byeoul-bori/12


책을 가끔 읽었지만, 자기 계발서는 책으로 치지 않아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자가 되었다는 이들의 자기 계발서는 물론, 그들의 유튜브 영상까지도 탐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부자가 된 이들을 보다 보면 한 순간에 부자가 되는 비법을 나 또한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은 지식은 금세 휘발되었고,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부자가 되기는커녕 그들의 책을 팔아주고, 조회수를 올려주면서 이미 부자인 이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고 있었다. 비법은 몰라도 결국 나도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는 내 안의 압박이 거세졌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남편은 독학으로 배웠지만, 나름 영상편집을 할 줄 알았다. 솔직히 말해 내 기준 남편의 편집 수준은 유명한 유튜브 채널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나 또한 미디어를 전공했다 보니, 영상 콘텐츠의 기획 및 촬영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콘텐츠의 작가이자 유튜버를 자처했고, 남편은 촬영과 편집을 도맡았다.


우리의 주타깃은 우리와 같은 ‘신혼부부’였다. 살면서 가장 많은 계약서를 작성했던 결혼 준비와 생애 첫 내  집 마련,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시행착오가 참 많았다. 나는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결혼을 제일 빨리했고, 친언니 보다도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즉, 나에겐 조언을 구할 상대도, 함께 고민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만큼 더 철저하게 알아봐야 했고, 모든 태스크를 하나하나 직접 부딪혀 가며 지나야 했다. 때문에, ‘결혼‘ 그리고 ’내 집 마련‘은 당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처음으로 조회수가 터진 콘텐츠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두 번째로 올린 인테리어 집들이 영상이었다. 우리 집은 복도식 구축 소형 아파트였는데, 그것이 조회수에는 좋은 영향을 끼쳤다. 생각보다 소형아파트 인테리어 관련 콘텐츠가 없던 탓이었는지 우리는 운 좋게도 소형 아파트 인테리어의 검색어를 선점하게 되었다. 이후 디딤돌 대출과 같은 정부지원 주택담보 대출 상품에 관한 설명 영상, 결혼식 비용 및 내 집 마련 비용 등 각종 지출 내역에 관한 영상, 연말정산과 같이 시즌을 타는 영상까지도 연달아 조회수가 터지면서 우리 채널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한 달 즈음 100명의 구독자를 달성하더니, 6주 만에 1,000명, 6개월 만에 1만 명의 구독자를 달성하였다. 유명세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순수하게 우리 손으로 만든 콘텐츠로 승부 본 결과였다.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눈덩이 불듯 노출도 늘어났고, 노출이 늘어난 만큼 구독자 증가 속도도 비례하여 올라갔다. 구독자가 1,000명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적지만 유튜브 수익도 생겼다. 꿈에 그리던 ‘부수입 창출‘을 생각보다 빨리 이뤄냈다.


그즈음, 우리는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함께 먹고, 또 치우고 나면 금방 9시가 넘었고, 함께 운동이라도 다녀오면 10~11시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늦은 밤, 그리고 새벽뿐이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것이 우리 목표였지만, 그 한 편의 콘텐츠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일주일 내내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도 점점 벅찼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혼부부였지만, 우리 삶은 풋풋한 신혼의 일상이 아닌 ’유튜브‘로 가득 차버렸다.


그러다 남편과 내가 회사 업무가 바빠지면서 겨우 유지하고 있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잦아진 야근은 우리 유튜브 시간표에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되었다. 6시 퇴근에도 겨우 만들어냈던 콘텐츠였다. 9~10시까지 야근하고 돌아와 유튜브까지 만들어 낼 여분의 체력은 우리에게 없었다. 그렇다고 유튜브 채널의 수익이 본업을 뛰어넘어 회사를 때려치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애초에 나는 유튜브가 아무리 잘 되어도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백만 유튜버가 되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 따위의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다.)


잠시 쉬어갑니다.


‘바쁜 일만 끝나면 다시 시작해야지’라고 했던 굳은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갔다. 그 사이 남편과 여행도 다니고,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도 시작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었던 나는 임신이 쉽지 않았고, 난임병원에 다니며 임신을 준비해야 했다. 새벽 2~3시까지 매일매일 유튜브를 만들어냈던 그 일상을 다시 시작할 여유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채널은 장기 휴업에 돌입했다.


하필이면 유튜브를 쉬고 있을 때, 부동산 하락시기가 겹쳤다. 금리는 치솟았고, 우리 유튜브를 끌어올렸던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악플이 시작되었다. 한창 유튜브에 집중했을 때 광고를 포함한 많은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그 많은 제안을 뿌리치고 나갔던 방송이 문제였다. ‘대출의 명과 암’을 다루는 좋은 취지의 다큐멘터리였는데, 제작 의도에 공감한 우리 부부는 기꺼이 출연을 결심했었다. 대출의 위험성에도 젊은 세대가 영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대변하고 싶었다. 분명 다큐멘터리는 제작진의 의도에 맞게 방영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자극하는 건 제작진의 좋은 의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만 자극적으로 편집한 콘텐츠가 ‘영끌 부부의 최후’ 등의 제목으로 각종 커뮤니티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네이버 메인까지도 올라갔다. 어느새 우리 부부는 ‘영끌 부부’의 표상이 되어 있었고, 내용의 진위엔 관심 없는 많은 이들이 손쉽게 키보드를 놀렸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난무한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합의되지 않은 무리한 투기에 부부 사이의 갈등은 극에 달했을 것이며, 지금쯤 죽고 싶으리라는 것. 우리 채널의 장기 휴업은 악플러들에게 더욱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억울함에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이어갈 동력은 이미 없어져 있었다. 부수입 창출이 유튜브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었지만, 우리가 유튜브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결국 구독자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도움 된다는 것이 뿌듯했고, 수많은 조회수와 댓글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서 힘이 났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며 야침 차게 꺼낸 ‘임신과 출산’이라는 키워드는 유튜브 생태 저편에 묻히고 말았다. 악플세례 속에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나의 얄팍한 선의에도 지속적으로 회의가 들었다. 무관심을 이겨내고 유튜브를 지속하여 다시 한번 재기해 볼 만큼의 간절함이 당시의 내겐 없었다.


이제는 1만 3천 구독자. 쉽게 얻은 수치가 아니었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문득문득, 다시 유튜브를 시작하면 어떨까 고민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유튜브 콘텐츠는 우리 부부의 현실적인 경험들이 주를 이뤘었다. 그 사이 쌍둥이를 출산했고, 우리 삶에 아이들을 제외한 주제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만약 다시 유튜브를 시작한다면, 그것도 지속가능한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선 우리의 현실적인 이야기 즉,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채널의 성장만 봤을 때 제일 좋은 건, 귀여운 아기들의 출연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노출시킬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만든 콘텐츠여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언제든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부부에겐 선택이었더라도, 본인들은 선택하지도 않은, 불쾌한 경험을 굳이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주고 싶진 않았다.


부수입 창출이라는 소정의 목표 덕분에 된통 당한 우리 부부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에게 ‘어떻게 하면 월급 외에 부수입을 마련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이 순간도 분명 행복하고, 현재 우리의 소득이나 자산이 결코 부족한 것도 아니다. 사는 지역을 옮기고, 우리의 지출을 더욱 옥죄면,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다. 부족하진 않지만, 여유롭지는 않은 딱 그 정도로. 문제는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살고 싶은 우리의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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