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정원

by 해진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살피는 것은 내가 가진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오후 네 시경에 나가야 하는 산책 시간을 그만 놓쳐버렸다. 수십 년간 일상이 되어버린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괜히 허전해져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 베란다의 창을 통해 제한된 바깥세상을 보는 일이다.

이제 나의 조그마한 정원에서 더 이상 봄꽃을 볼 수 없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겨우 오월 초인데 꽃들이 거의 다 져버리다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아직 빨강, 분홍, 하양의 철쭉들이 빛바래고 남루한 몇 송이의 꽃들을 달고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며칠 후면 나무 아래 수북해진 꽃무덤에 모두 내려앉을 것이다. 화려하기로는 봄꽃만 한 것이 있을까마는 피었다가 지고 나면 그뿐, 무상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장남이라 나는 어린 시절 결혼 전인 고모와 삼촌들과 한집에 살았다. 마당이 제법 넓었는데 한편에 예쁜 꽃밭이 있었다. 고모는 꽃을 좋아하여 이른 봄이 되면 전 해 가을에 받아둔 꽃씨들을 모아 놓았다가 이듬해에 못 쓰는 숟가락으로 흙을 파고 그것들을 정성스레 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에서 파릇파릇하고 귀여운 싹들이 돋아나고 그들이 자라서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고모가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는 줄 알았다. 고모가 볼일이 있어서 외출이라도 하면 혹시 요술방망이 같은 걸 숨겨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고모의 방을 이리저리 뒤져본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철 모르던 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시절에는 아직 심으면 나는 자연의 이치를 잘 몰라서 그리하였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조그마한 정원이 딸린 아파트 일층에 살고 있다.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고모의 영향인지 몰라도 나도 조금이라도 빈 땅이 있으면 거기에 무얼 심었다. 적어도 몇 년 전만 해도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고모처럼 가을에 씨를 받아둔다거나, 알뿌리를 겨우내 건사했다가 봄에 심는 따위의 농부 기질 같은 건 내게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 봄에 의왕의 한 꽃가게에 들러 가지각색의 꽃들을 작은 트럭 하나가 꽉 찰만큼 주문하여 실어 나른 적이 있었다. 너무나 예쁜 꽃들에 정신이 훅 가버렸는지 그만 백화점 명품관에서나 강림하실 지름신이 의왕 꽃가게 단지로 납신 것이다. 겁도 없이 만만치 않는 꽃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좋았다. 이 꽃들을 모종 화분에서 모두 꺼내어 대충 색을 맞추어 뜰에 심는 것이 내겐 중노동이란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동네 꽃집에서 다람쥐 알밤 모으듯 조그마한 화분들을 몇 개씩 날라다 심을 때는 힘든 줄 몰랐는데,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 꽃모종들을 심는데 우리의 소중한 휴일을 몽땅 반납했다. 일을 할 때는 힘들었지만 다 심어놓고 보니 그 화려함이 왕후장상이 소유한 정원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여서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 장마가 오기 전 두 달 정도는 그 눈부신 꽃들을 날마다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고된 줄도 모르고 중노동을 감당했었다. 노란 수선화, 분홍, 빨강, 노랑의 튤립, 분홍보라 꽃잔디, 알록달록한 팬지, 색색의 앵초, 영산홍, 노랑무늬 붓꽃, 그리고 이름조차도 생소한 꽃들....... 정말 없는 게 없었다. 그런데 뭔가 2% 부족한 그 느낌은 왜였을까? 사실 화려하기로 말하자면 고모의 소박했던 꽃밭과 나의 아파트 정원은 비교 대상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면서 그 느낌의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생각해보려 하였다. 나의 정원과 고모의 꽃밭에서 내가 느꼈던 정서의 차이가 어떤 아쉬움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돈의 힘으로 단 하루 만에 급조한 화려함이 고모가 일 년 내내 기울였던 정성으로 가꾸어진, 내실이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러한 고모의 꽃밭을 사랑했던 것이다.

꽃씨를 심고 나면 언제 싹이 트는지, 어느 때쯤 그 작고 여린 잎들이 도타워지기 시작하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가지가 생겨나고 그 가지들 사이에서 꽃망울들이 만들어지는지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까지 고모와 나는 종종, 아니 꽤 자주 꽃밭 앞에 함께 쪼그리고 않아 시선을 그 여린 것들에게 고정시킨 채 안타까운 마음과 작은 환희들을 공유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아파트 정원에는 그런 정서가 깃들 여유가 없었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배어 있었을 수밖에.


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의 앞 베란다 창가에는 달리아인지 백일홍 종류인지도 모르는 몇 개의 화분들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꽃들은 그들의 고유한 이름으로 불릴 때 그 존재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인인 나는 이름 따위엔 관심도 없다. 꽃집 주인 여자가 꽃이 든 봉지를 들고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분명히 이름을 알려주었건만 그저 들은 척만 한 것이다. 이른 봄에 화분 몇 개를 사는 것은 이제 내겐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빈 땅만 보이면 부지런히 꽃을 사다 심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고모의 정원이 그립다. 이십칠 년 전 교통사고로 비명에 간 나의 띠동갑 고모가 몹시 보고 싶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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