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 인생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편 No.1

by 해진

나는 어떤 복잡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이 지금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 갈피나 가닥을 잡아 보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그저 방관자처럼 나의 밖으로 나와 나를 본다. 늘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각들로 뒤엉켜 있는 내 속을 말이다.
내 속이라고 해서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론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사고의 편린들이 떠돌면서 마음을 헤집어 놓을 때도 있는데, 구태여 그것들을 잡아 확인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냥 모호한 그대로의 느낌으로 남겨둔다. 그러다 가끔은 그런 일들이 도화선이 되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이십 대의 나는 이곳에 있으면 저곳이 그립고, 저곳에 가면 다시 이곳을 그리워하는 못 말릴 변덕쟁이였다. 기쁠 때는 때론 기쁨 자체에 탐닉해도 좋으련만, 자주 그 끝자락에 숨 쉬고 있는 두려움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극복하기 어려운 일로 인해 슬픔에 잠길 때는 오히려 차분해져서 마음속의 찌꺼기 같은 것이 그 슬픔을 통해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참는 것이 너무나 벅차 인생 자체가 가라앉아 버릴까 봐 적잖이 두려운 적도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두려움에 대응해 가장 적절하게 내 성격 안에 자리 잡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방관’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건 내 입장에서 볼 때 분명 포기라는 말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 시절 내가 또래의 다른 이들보다 유독 그러한 두려움을 많이 경험하고 살았던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부권이 유난히 강했던 우리 집에서는 무언가를 한 번 해 보려고 하면 아버지의 허락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고, 나의 아버지는 여자는 적당히 교육받고 시집만 잘 가면 만사형통이라는 확고부동한 생각을 가진 분이었기에, 그런 나의 생각 자체가 부권에 대한 엄연한 도전이었다.
딸이 셋이었던 우리 집의 나머지 두 딸은 감히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 엄두조차 못 냈으므로, 당연히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탄압 대상 1호가 되었고, 그 후 몇 번이고 대학을 가려는 시도를 암암리에 했지만 결국 모두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소위 남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인 스물네 살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부당한 처사에 호시탐탐 적시타를 날릴 기회를 엿보다가 이때다 싶어, 만약 대학을 못 가게 하면 처녀귀신이 될지언정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고 호랑이 같은 아버지에게 과감히 선전포고를 했다.

그 결과, 그동안의 대학 진학 문제로 인한 부녀 간의 알력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아니면 이러다가 딸이 진짜 처녀귀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에 청을 들어주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그만 내게 백기를 드시고 말았다.
남이 보기엔 “그딴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라고 하겠지만, 난 정말 죽음이라도 불사할 것처럼 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아버지도 이제 그러한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셔야 해요. 아버지는 세월 가는 줄도 모르세요?"라는 말 따위를 했다가 매가 부러지도록 얻어맞는 건 기본이었다. 그래서남매 중 유독 나만 맞고 자란 것 같다.

암튼, 내가 기억하기로 그때 아버지는 딸 셋 밑으로 줄줄이 있는 세 남동생들의 학비를 감당하기도 힘겨우셨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들은 무조건 대학까지 보내고, 그보다 성적이 나은 딸은 고등학교까지만 나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남아선호 사상에 죽어도 동의할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끝까지 투지를 불사른 하나의 이유로도 작용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바라던 대학에 들어갔지만,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당신의 주의를 포기하실 분은 아니었다. 소원하던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물을 먹어 봤으니 한 학기만 다니고 결혼을 하라는 것이었다.
‘어이구,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버지가 누구신데······’

그 후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었는데, 나도 울 아버지의 딸이므로 그 대응이 녹록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전투태세를 재정비하고 임전무퇴 정신을 불살랐으니, 집안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건 기본이고 내 마음도 늘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때는 내게 늘 호령만 하시는 아버지 얼굴만 떠올려도 증오감이 불타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지경이 되기도 하였고,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대들면서도 대문 밖만 나가면 조신한 숙녀인 척하는 괴리를 견디지 못해 목욕탕에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식구들 몰래 운 적도 많았다.

-계속-


Photo by Volkan Olm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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