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저서 '향수'에는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한테서는 오래된 치즈와 상한 우유, 그리고 상처 곪은 냄새가 났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될지는 모르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한국식으로 고친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한테서는 오래 묵은 된장과 묵은지, 그리고 상처 곪은 냄새가 났다'라는 정도로 해둘까. 나이 든 사람, 좋지 않은 냄새 그리고 상처 곪은 냄새등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 의학적인 사실에 기반한다. 하지만 연세가 아무리 높아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건강한 노인분이라면 내가 제시하는 이런 예들과는 아직 상관이 없다. 그리고 흐르는 세월에 대한 민감도가 상승할 나이에 도달한 나라는 사람도 머지않은 시기에 노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 감히 누구 앞에서 '언감생심' 이런 인용을 함부로 쓰겠는가? 전혀 노인을 비하한다거나 편견에서 우러난 표현은 아니라고 밝혀 둔다. 그리고 지금은 건강백세시대라 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몸에 켜켜이 쌓인 체취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본다.
체취에 대한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경험은 나에게도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설암으로 61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굉장히 일찍 세상을 하직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만 해도 장수를 향한 기대치가 요즈음과는 판이한 시대였다.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할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고도 큰 충격을 받지도 않았던 그 당시의 상황을 지금 떠올리면 할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처음에는 그래도 곧 나으시겠지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암이란 병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어린 시절이라 그리하였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병의 말기에는 나는 할아버지 근처에 가능하면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날숨을 내뱉으실 때마다 입에서 풍겨 나오는 그 냄새가 너무나 역겨워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나쁜 음식들이 부패하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쓰레기장에 널브러져 있는 썩은 묵은지의 냄새를 연상케 했다. 한 번은 그 냄새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거의 토할 뻔한 기억도 있다. 아마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란 것이 상당히 이기적이고 미완성적이었던 때라서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즈음 같으면 그런 상태에 있는 할아버지를 큰 병원으로 모셨겠지만, 그 시절에는 큰 병원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중병을 앓는 환자를 위해 좀 산다 하는 집에서는 자택에서 왕진 의사를 불러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있었고, 경제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환자에게 민간요법을 쓰다가 그냥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환자에게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을 시도했다가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 한들 그것을 행한 자의 명백한 고의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로 인해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회적으로 그런 일들이 허용이 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부검이라는 명분 하에 죽은 자의 몸에 메스를 대는 행위 자체가 터부시 되었던 때였기도 하다.
하여튼 할아버지는 암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리셨지만 초기단계에는 병원에 잘 다니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 가서 병이 갑자기 중해져서 의사로부터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으셨고 이제 더 이상 병원에 오실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그 의사로부터 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환자에게 더 이상 병원에 오지 말라는 말은 사형선고와 다름 아닌 표현이었다. 지금은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다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우리 엄마는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세상에 둘도 없는 성실한 간병인이 되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그리 비추어졌으니 말해 무엇하랴! 엄마는 정체불명의 가루를 개어서 할아버지의 입안에 붙여 드리기도 하고 좋다는 첩약도 한의원, 아니 한약방으로부터 구해 와서 정성껏 달여 매 끼 후에 드시게 했다. 엄마도 예외 없이 할아버지의 병세호전을 위해 몇 가지의 민간요법을 적용시키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와서 내가 그것들에 대해 세세히 언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민간요법이나 처방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 같은 것이 그때의 내 나이에 있을 리 만무하니까. 어쨌든 그렇게 할아버지의 병은 깊어만 갔다.
병세에 비해 식욕이 좋으셨던 할아버지는 엄마가 끓여 드리는 녹두죽을 참 맛있게 잘 드셨다. 제법 큰 양푼이로 한 그릇은 족히 될 양이었다고 기억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할아버지의 행동이 식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생에 대한 마지막 의지를 표상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철이 들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깨닫고는 숙연해지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아무리 죽을 잘 드셨어도, 엄마가 아무리 할아버지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첩약을 달여서 드시게 했어도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는 냄새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나는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기 싫었으나 가끔 엄마가 할아버지께 수건을 가져다 드려라, 간식이나 약을 가져다 드려라 할 때는 바쁜 엄마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할아버지의 방을 출입해야 했으므로 불가피하게 그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서 어린 나도 점점 할아버지의 병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심한 냄새를 풍기는 할아버지에게 그토록 정성을 쏟은 것은 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었다는 것을 막연하나마 알게 된 것도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많은 세월이 흘러서인지 내게 그토록 선명했던 할아버지의 날숨에서 나던 썩은 묵은지의 냄새에 대한 기억도 점점 사라져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한 사람이 오래 보유하고 있는 냄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하여 그 냄새와 연관된 사람에 관한 소중한 기억마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손자 손녀들을 돌보시느라 늘 바쁘셨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안 곳곳을 다니시며 이곳저곳을 수리하셨고, 겨울에는 부서진 연탄을 모아 부수어서 그것을 물에 개어 조개탄을 빚어 굳혀서 난방용 화로의 땔감으로 쓰셨던 할아버지의 부지런한 모습을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을 때 다른 그 누구와 함께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내게 늘 다정하고 인자하신 분이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오래전, 막내삼촌이 세 살 때 돌아가셔서 내 기억에 존재할 수도 없는 할머니의 부재로 인하여 할아버지는 일곱이나 되는 자녀를 홀로 키워내셨다. 물론 고모들이 성장해서 할아버지의 집안일을 많이 도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장남이신 우리 아버지는 죽 집안의 경제적인 책임을 지셨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왜 그 긴 세월 동안 재혼을 하지 않으셨는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들은 바 없다. 다만 혼자 힘으로 많은 자녀들을 건사하시느라 할아버지가 집안 살림에 통달하신 분이 되셨다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밥 짓는 법, 뜨개질하는 법 그리고 손바느질하는 법 따위도 모두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오랜 세월을 생각하면 비록 할아버지의 그 마지막 냄새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밖에... 그래서 할아버지를 향한 나의 사랑은 영원히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소나무숲세권에 살고 있는 나는 자연스럽게 소나무 향을 좋아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의 오전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창을 열고 넋이 빠진 것처럼 소나무 숲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은은한 숲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서재로 훅 들어온다. 매일 느낄 수 있는 이 향기가 내 삶에서 기억하는 모든 나쁜 것들을 다 덮어주면 좋겠다. 할아버지께서 병이 없이 건강하셨을 때의 체취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한번 상상해보기도 한다. 생전의 성품이 온화하고 착하셔서 할아버지는 지금 천국에 계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도 이 세상에서 죽 내실 있고 선한 삶을 살다가 언젠가 이곳을 떠나면 그곳에 계신 할아버지를 꼭 만나 뵙고 싶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만큼은 천국이란 것이 실재한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