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진짜 왕관이라면 온갖 희귀한 보석으로 장식된, 한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머리에 쓰는 관(冠)이기에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에 못지않게 당연히 그 무게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선 '왕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왕이나 여왕일 것이며 그다음에는 그 왕관을 머리에 얹은 한 국가의 모든 권력과 명예를 한 몸에 지닌 전제군주의 위엄 있는 모습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적성에 맞든, 맞지 않든 한 가지 이상의 비교적 고정된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거의 누구나 필연적으로 한 번쯤은 자신이 적을 두고 있는 분야에서 , 그것이 비록 자신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할지라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꿈꾼다. 즉, 그 분야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꿈을 꾼다.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한 여부는 당연히 개인의 재능, 노력, 환경 그리고 다소간의 운에 달렸다고는 보지만 그러한 요소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우뚝 서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길은 보통은 가시밭길인 데다 최후의 좁은문을 통과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올림픽이나 그와 유사한 형태의 인생의 큰 경쟁에서 준결승 진출자만 되어도 어떤 인물에게는 감지덕지한 일일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한 재능과 능력에는 개의치 않고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정상의 자리에 서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욕심 - 비록 그것이 선한 종류의 것이라 하더라도- 이 내가 추구하는 일의 능력에 못 미치고, 운마저 내편이 아닐 때엔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나아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과연 내가 이토록 열망하는 그 자리가 자신에게 적합한지, 오히려 바라던 일을 성취했을 때 그 결과가 상처뿐인 영광이 아닌 상처만 가득한 불명예로 남을지에 대해 한 두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인간의 귀하디 귀한 목숨을 보전하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이다.
이래서 우리 인간에게는 선견지명이라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라는 것에는 어떤 나쁜 일을 겪어보지 않고도 후일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도 생득적 (生得的)인 것은 아니어서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진흙탕에 뒹굴어 본 후에야 자기의 것이 된다 하니 참 인생이란 어렵다. 여러모로 최상위의 자리에 서려는 사람은 "꽃길을 걸으려면 흙길을 걸어라."는 어느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어디 그런가? 상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은 하되,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누구에게나 있다. 대학 강의실에 가보면 시험을 코앞에 앞둔 학생들의 교수의 강의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교수의 숨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창조성을 더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저 좋은 성적만이 목표인 것이다. 교수의 기침 소리 까지도 시험 답안지에 등장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있다. 그것에 호응하는 일부 교수들의 태도도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학 교수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모두가 상위권에 진입하려는 풍조가 생길 수밖에. 대학생들도 이러하니 하물며 세상물에 찌든 연배 있는 사람들의 처신은 과연 어떠할까? 아무래도 독야청청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위에서 말한 이러한 현실에서 한 발이라도 더 상위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특수한 권력을 지향하는 세계에서는 두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신파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능력도 없으면서 - 이들의 사람들을 선동하는 능력과 줄을 잘 서는 능력은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 그들의 행렬에 가세하는 사람들의 수도 만만치 않다. 그중에는 지금의 나는 비록 이 행렬에서 뒤처져 있지만 결국에는 맨 앞자리를 차지할 거야 라는 야심을 품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중 일부는 많은 민폐를 끼쳐가며 탁월하게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로 자신이 원하던 자리를 꿰차게 되어 적어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지금까지 잘 먹고 잘살고 있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런 자들의 인생의 최후는 주로 해피앤딩이 아니다. 명예의 실추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뒤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인류들은 어떤 특정한 직업군에서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 들의 살아낸 인생의 결과는 후일 역사가 심판해 줄 것이므로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비록 왕관은 썼지만 진정한 의미의 왕으로는 추대받지 못한 자들, 혹은 추대받아서는 아니 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추한 감정과 공포를 유발하는지라 더욱 그러하다.
정의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타인이 소유한 것을 도용하거나 심지어는 강탈해서라도 그것을 제 머리에 얹어도 되는 것일까? 내 생각은 그런 비윤리적인 행위로 최상위의 위치에 도달한다 해도 별 의미가 없으며 그런 것이 오래갈 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아 곧 왕으로 추대받을 물망에 오른 자가 성급해진 마음에 몸소 자기 머리에 왕관을 올려놓는 어리석은 행위를 자행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 사람은 이 무거운 왕관을 쓰고도 그 무게를 잘 견딜 수 있을 거야."라고 인정해 줄 때까지 즉위식에 대한 조급함을 잠시 누르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왕관의 무게에는 인내심 외에도 장차 그 자리를 차지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무게와 상응하는,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는 책임감의 무게 또한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애초에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한 체력과 마음의 담력을 소유하지 않은 자는 왕관을 탐하는 것이 과욕이 된다. 그리고 그 왕관이 화려할수록 더 무게가 나갈 수 있으니 목뼈가 무쇠같이 강하지 않은 자는 왕관을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