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workaholic)
이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해가 있는 동안 마무리를 지어야 할 수많은 잡다한 일들, 그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파생하는 피해가기 어려운 또 다른 일, 일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일들이 해가 진 후 밤이 되었다고 해서 칼로 두부 자르듯 끊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모두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늘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나 구한 사람이 분명하다.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이 산재해 있는데 아무리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월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류의 사람들은 그 탁월한 능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일을 의뢰받을 수 있으므로 탁월하게 더 많이 시달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능력의 많고 적음을 아무리 고려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닐 수 있는 마음의 여유나 평화는 해야 할 일과 반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서 그것으로 인해 수입도 많아지고 명성도 올라가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어느 시기에 일이 폭주하여 그 도를 넘어 건강을 위협하고 존재가 위험에 처할 지경에 이르면 그 누구라도 번아웃과 같은 과잉적응 증후군(overfitting syndrome)에 자신도 모르게 오랜 기간 노출되어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종내에 가서 혼자 해결이 안 되면 그제사 정신과 의사를 찾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라도 자신의 상태가 심각한 지경에 처한 것을 인지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노선을 점검하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던가, 잠시 그 길에 앉아 쉬어라도 가면 좋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나라의 능력자들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지금의 그러한 자신의 상태를 그저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단 한 발도 물러가는 것을 거부한다.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꼬는 말이 결코 아니다. 나는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그럴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저 그들 앞에 펼쳐질 그들의 미래가 눈에 선하게 보여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다. 혹시 그들이 원래 보유하고 있던 훌륭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보기도 전에 육체적,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진해 버려 그들의 그 소중한 능력을 병으로 날리고 좀 더 이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상실이란 벽에 부딪히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는 내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슈퍼맨을 방불케 하는 체력이나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들도 간혹 있어서 그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잘 견뎌내어 끝내 승리의 월게관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일반화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므로 여기에서 간단히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 개인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든지 그것이 사회의 법과 윤리, 거기에 더하여 본인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가 선택한 삶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자신이 피와 살을 가진 유한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을 가끔씩이라도 인지해야 하는 비애를 지나고 살아야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때로는 지금의 상황에서 기꺼이 한발 물러갈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한발 나가는 게 용기라면 상황에 따라서는 뒤로 한발 물러나는 데는 두세 배의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 후퇴에 대한 치욕감 혹은 명예의 실추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일할 때 일하고 적당히 휴식을 취하면서 보통의 삶을 택한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문제는 발생한다. 이런 삶을 살다가 남들에 뒤쳐지면 어쩌나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을 택한 사람들을 오히려 주위의 문제가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틈만 있으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오면 더 높아진 위상과 거기에 더하여 더 좋은 차, 더 넓고 화려한 집에서 살아가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며 부추겨대니, 좀 더 안 좋은 말로 하자면 수시로 꼬드겨대니 결국에는 그런 시대적인 꾐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만큼 돈이란 것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이 수완 좋은 경영자라면 자신에게는 없는 그들의 출중한 에너지와 능력을 탈탈 털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남김없이 쏟아 붓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시스템화해서 회사의 방침인양 합리화 하기도 한다. 그들은 많은 연봉을 제시하며 그들의 능력을 바닥까지 긁어 사용한 다음에 더 이상의 효용가치를 기대할 수 없게 되면 그들에게는 거금이라고 여겨지지만, 평생을 충성을 바쳐서 일한 것에 비하면 결코 거금일 수 없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조기은퇴하도록 유도해서 사정없이 밀어내어 버린다. 그리하여 많은 능력자들이 일에 시달리다 그것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조기사망시키는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일중독자들의 말로는 거의 뻔하다. 일중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면서 자기 한 몸을 직장과 이 사회를 위해서 송두리째 바쳤건만 정작 은퇴 후에 아무런 합당한 대우도 못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일에만 온몸과 정신을 바치고 살아왔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 친구들 혹은 그밖의 지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대로 소원해져 있으니 은퇴 이후의 삶도 평탄치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말은 때로는 달콤한 꿀과 같고 때로는 향기로운 기름과 같아서 상대방의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여 입맛이 당기게 한다. 그런 것에 일단 중독되어 버리면 그 상태에서 헤어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그들 중의 일부는 그들의 기술이나 다른 능력들을 탐하는 불온한 자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쳇바퀴의 다람쥐처럼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가 은퇴 후에 이어지는 무기력한 삶에 채 적응도 하기도 전에 이 세상과 이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인생의 결과를 원하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삶은 회사원의 그것보다 더 비참했으면 비참했지 나을 것이 없다는 통계도 널려있다. 그래도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주말과 토요일 그리고 공휴일에 쉴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기나 한다지만 대부분의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그런 날엔 명분 없이 더 바쁘고 주말에라도 편히 쉬려고 해도 단골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별 소득도 없이 더 쉽게 일중독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 분야에서도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아니라 신화가 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챙길 것은 챙기자.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데 대해 발생하는 후유증이나 불상사는 결국은 본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해가 갈수록 삶은 팍팍해지고 자기 밖의 일은 나 몰라라 하는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물질 만능의 거대한 힘에 휘둘리지 말고 착실하게 제 갈길을 가야 할 일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의 제목이 떠오르는 밤이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