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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예찬

by 해진

쓴맛도 약이 될 때가 있다지만

음식은 일단 맛있어야 한다.

비교적 무난한 편식가에 속하는 나는

비빔밥을 사랑한다.

그런데 미식가라는 말은 귀에 익은데

편식 가라는 말은 흔히 쓰이는 말 같지

않은 데다,

무난한 편식가란 말은

조합이 잘 맞지도 않는다.

그렇기는 한데

다른 짧은 언어로 내 음식 취향을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비빔밥을 사랑하는 이유는

비밥밥의 고명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울 수 있어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 끼 밥에서도 자유를 찾는 나,

진심 자유라는 말을 좋아하나 보다.


비빔밥은 그리 까다로운 레시피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단순한 잡탕이 아닌

제대로 된 비빔밥을 맛보려면

소중한 내 자유의 시간을 바쳐

나물을 다듬고,

씻고,

삶아내고,

무치고,

볶아야 하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비록 '잡식주의'의 삶을 살고 있지만

'채식주의'를 지향하므로

비빔밥만큼은 나물범벅이어야 한다.

비빔밥 하나 만드는데도 이렇게 무슨 '주의'라는 철학이 필요하다.


살짝 데쳐

오돌오돌한 맛이 살아있는

노오란 콩나물과

풋내는 나지 않으면서

푸석하지 않게,

도로 밭으로 가지 않을 만큼,

끓는 물에 적당히 데친

초록빛 시금치를

각각 찬물에 잘 헹궈

꼭 짜준 다음

샐러드 볼에 담아 살살 풀어

갖은양념 다 넣어,

손맛 더하여 조물조물 무친다.

올리브유 듬뿍 넣어

소금 한 꼬집 더하여

달달 볶아

베타카로틴 가성비 갑인

주황빛 당근채,

채 썰어 새콤달콤하게 무친

단물을 잔뜩 머금은

순백의 무 생채,

연두와 짙은 보라의

얼룩이 상추 몇 잎 잘게 찢어

이 모두를

갓 지어 고슬고슬하고

윤기 자르르한 밥 위에

예술가의 마음으로

색 맞춰 예쁘고 먹음직하게 배열하여

그 위에 환상적 믹스의 결정체인

비법 양념 고추장 한 스푼까지 얹어

참기름 치고

깨 솔솔 뿌리면

맛있는 비빔밥 만드는 과정

완성!


아니다, 아직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아무리 채식지향주의라 해도

프라이 팬에 한쪽으로만 살짝 구워낸

계란 하나 그 위에 얹어주면

비빔밥의 비주얼 효과가 상승할 뿐 아니라

비빔밥 하나로

'화룡정점'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는 거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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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나물 없이 밥 먹기 힘들 만큼 나물보인 나는 위의 다섯 가지 채소에다 아침에 만들어 놓은 오이미역 생채와 약간의 다진 배추김치까지 총 여덟 가지의 채소를 넣은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한마디로 정성을 기울인 만큼 최고의 식사였다. 나는 고기요리도 좋아 하지만 나물반찬이 여러 가지라면 굳이 고기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비빔밥이란 것이 간단하려면 한없이 간단하고, 격식을 차려서 만들자면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시간이 없거나 급한데 식사는 해야겠을 때 한두 가지 채소나 나물에 고추장과 참기름만 넣어 비벼 간만 맞추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음식이 이 비빔밥이란 점에서 우리 한국인에게 변함없이 인기가 있다. 달걀도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구워 채를 썰어 비빔밥 고명으로 올리려면 그것 한 가지만 해도 일이 된다. 또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빔밥에는 소고기 볶음 같은 고명도 필요하므로 이렇게 되면 일이 더 불어난다. 거기에다 김가루를 듬뿍 뿌려서 먹는 사람도 있으니 비빔밥에 대한 취향은 백인백색이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요리 연구가도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 비빔밤에 대해 특별한 정보 같은 게 따로 수집하지 않으면 있을 리 없다. 그저 오늘 점심으로 먹은 비빔밥이 맛이 있었기에, 특별할 것도 없는 비빔밥 한 그릇에 이렇게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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