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직면한 유가 낮추기의 어려움
2026년 7월 8일.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싹둑 잘렸다. WTI유 48달러, 브렌트유 49달러, 천연가스 2달러. 전용기에서 내린 트럼프는 거들먹거렸다. “아름다운 유가를 보세요. 바이든플레이션(바이든+인플레이션)은 끝났어요. 멍청한 바이든은 뭘 한 거죠? (Look at the beautiful oil prices. Bidenflation is over. What did stupid Biden do?)”
미국 에너지 회사들이 기름을 마구 뽑아냈다.
서민들이 신났고 공장 주인들이 신났고 투자자들도 신났다. 투자자 심장을 설레게 한 말은 연준의장 입에서 나왔다. “끈적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승리” 변호사 출신 특유의 애매한 말만 하던 제롬 파월이 오랜만에 확신을 보여줬다. 나쁘지 않은 GDP와 디플레이션. 이는 골디락스였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완만하게 떨어졌다. 골드만삭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모건 스탠리 전망은 빅컷(0.5%)으로 수렴했다.
‘괜찮은 GDP’, ‘디플레이션’, ‘금리인하’
이 삼위일체는 중간선거를 공화당 무대로 만들고 있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SNS에 트럼프가 로널드 레이건 만큼 위대한 대통령이라며 추앙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표정이 썩었다. 에너지 회사의 무분별한 증산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트럼프를 비판했지만, 도덕은 물가보다 와닿지 않았다. 표정이 썩은 사람은 더 있었다. 푸틴이었다. 전쟁으로 소모된 군수 장비를 채워야 하는데 속도가 더뎠다. 에너지 가격이 떨어져 러시아 군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푸틴은 증산에 합의한 중동 국가들에게 투덜거렸다. 이란? 더 가난해졌다. CIA에 따르면 이란 젊은이들은 대규모 시위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 에너지 회사들이 미쳤다고 증산할 것인가?
-유가를 낮추면서도 에너지 회사의 이익을 늘린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들린다.
-에너지 회사가 생산을 늘린다고 치자 중동 국가들이 미쳤다고 가만히 있을까?
-트럼프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까?
“He caused the inflation.
I gave him a country with no, essentially no inflation.”
(나는 그에게 인플레이션이 없는 나라를 줬는데, 그가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어)
_CNN 대선 토론 중 트럼프의 말
바이든의 가장 아픈 곳은 물가였다.
트럼프는 바이든 때문에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바이든이 얼마나 경제를 망쳐놨는지 떠들고 다녔다. 대선 결과는 트럼프의 압승. 바이든의 패배는 물가는 곧 민심이고, 민심은 곧 물가라는 걸 보여줬다. 트럼프도 자신이 물가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걸 알았다.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트럼프는 바이든을 씹을 때마다 자신은 물가를 잡는 방법을 안다고 말했다. 물가의 핵심은 에너지 가격이니까 미국이 석유와 가스를 더 뽑아 에너지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면 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계획이었다.
중간선거라는 심판 전에 유가를 잡아야 한다.
트럼프는 자국 에너지 기업들에 생산을 더 늘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여기에 모순이 있었다. 생산이 늘어나면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내려간다. 소비자에게 매력적이지만, 미국 에너지 기업은 돈을 잃는다. 당장 에너지 기업이 생산을 늘리겠다고 결정해도 새로운 유정(油井)이나 셰일 가스전을 개발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본이 많이 든다. 만약 4년 뒤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뀌기라도 한다면? 규제 철퇴를 다시 맞아 에너지 기업들은 돈만 쓰고 손발이 묶인다. 새로운 생산 시설로 기름과 가스를 더 뽑아냈다고 치자, 중동 국가들은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감산을 시작할 것이다.
증산 요구는 자해 요구였다.
배럴당 65달러가 석유 업계의 신성불가침한 손익분기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석유 업계에서 저항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석유 생산업체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업들은 더 이상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가가 30달러대로 폭락했을 때 수많은 셰일가스 개발업체가 파산으로 내몰린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트럼프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에너지 기업으로 에너지 가격을 낮추려면 에너지 기업에 이득을 가져다줘야 한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 같지만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파리기후협약 탈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승인 중단 번복, 석유 및 가스 생산 규제 완화, 백악관에 새 전력 인프라 승인 권한 추가 부여, 알래스카 원유 시추 제한 종료, 해상 풍력 프로젝트의 신규 허가 금지 등의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유럽과 아시아를 관세로 협박하면서 미국 에너지를 사도록 협상하고, 에너지 기업에 보조금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석유업계는 콧방귀 뀌고 있다.
셰브론의 워스 CEO가 말했다. “석유 기업 입장에서는 에너지 관련 정책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 더 지속성이 있고 앞으로 나올 행정부에 의해 뒤집힐 위험도 없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될지도 모르는데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없다고, 그래서 대통령 행정명령만으로 정책을 펴기보다는 법률에 더 의존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는 석유업계에 매달리며 시간 낭비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반전은 4월 3일에 일어났다.
갑자기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 8개국이 예상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석유 시장은 경악했다. OPEC+ 대빵 사우디아라비아의 'Drill, Baby, Drill'. 이 변화는 무엇을 설명할까?
5월 13일 트럼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첫 대통령 순방이었고 선물 꾸러미를 잔뜩 들고 갔다. 1420억달러(약 200조원) 규모의 방위 장비 판매 계약을 체결했고, AI 기술 협력을 체결했으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요청으로 시리아 제재 해제를 선언했다. “아, 내가 왕세자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하는지(Oh, what I do for the crown prince)” 연단에서 트럼프가 한 말이었다.
## 참고 자료
-[셰브론 CEO "일관된 정책 필요"]
https://www.yna.co.kr/view/AKR20250311065200009
-[트럼프, 사우디 순방서 1420억달러 거래 성사 … '시리아 제재 해제' 약속]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pqe9vq40e2o
-["석유 더 뽑아 물가 낮추자" 트럼프에... 미국·사우디 업자들 '절레절레']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0410540005487
-[With Extra Oil, Trump Already Has His Big Saudi Win]
https://www.csis.org/analysis/extra-oil-trump-already-has-his-big-saudi-win
-[OPEC+, 4월부터 석유 증산…"트럼프 영향력"]
https://www.asiae.co.kr/article/2025030406594378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