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에 방치된 유년시절 2
나는 돈을 물쓰듯 써보지는 못했어도 돈을 무 자르듯 잘라보기는 했다. 사실이다.
아마도 내 나이 대여섯 살 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화창한 봄날, 꼬맹이 4명은 한 참을 놀다가 우연히 돈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폐 한 다발이었는데 아마도 백 원짜리 지폐 뭉치였던 것 같다. 당시 세종대왕이 그려진 백 원 지폐와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오백 원 지폐가 사용되던 시절이었는데 아마도 세종대왕이었던듯하다. 지폐 한 다발이었으니 백 장 뭉치였을 테고 그때 돈으로 만원이었지만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꼬맹이들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꼬맹이들은 돈뭉치를 들고 큰 다리 밑으로 기어 들었다. 어린 시절 우리의 주 놀이터는 마을 중간에 있는 '큰 다리' 밑이었다. 1년에 한두 번 장마철에나 잠깐 개울로 변하는 크지 않은 건천 위에 있었던 '큰 다리'는 동네 어느 집과도 연결되는 마을의 중심지였다.
“니들 눈깔사탕 먹고 싶지? 끔(껌)이랑 쫀득이도 먹고 싶지? 야! 이거 있으면 그거 다 사 먹을 수 있다”
박살이 아는 체를 했다. 우리들은 금세 입에 침이 고였다.
“주운 사람이 임자니깐 우리 이거 똑같이 나누자”
“병호 너네 집이 가까우니까 집에 가서 칼 좀 가꽈”
“왜?”
“야 돈을 똑같이 나누려면 반으로 잘라야지”
박살의 설명에 나머지 꼬맹이들도 나보고 얼른 칼을 가져오라고 했다.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둑고양이처럼 부엌에 숨어들어 엄마가 쓰는 식칼 중 하나를 들고 큰 다리 밑으로 뛰었다. 박살이 칼을 잡더니 돈을 자르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한 번씩 돈을 잘랐다. 박살은 반으로 자른 돈을 4등분 했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를 하기로 했다. 지폐를 반으로 자르니 어느 쪽은 세종대왕 얼굴이 있었고 다른 쪽은 없었다. 혹시 있을 불만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1등부터 고르는 거다” 가위바위보 순위에 따라 각자 마음에 드는 돈뭉치를 골랐다. 우리는 저녁이 될 때까지 ‘무엇을 사 먹을까?’ 하는 신나는 궁리를 하며 다리 밑에서 노닥거렸다. 앞산 능선에 해가 걸치고 동네 굴뚝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무렵 각자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뛰어 들어와 엄마한테 반으로 잘린 돈뭉치를 보이며 자랑했다. “엄마 나 돈 주었다” 돈을 본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으로 잘린 돈과 그 양에 놀란 엄마는 “아이고 이 미련한 놈” 하며 소리를 빽 질렀다. 잘했다는 칭찬을 예상했으나 돌아온 것은 꾸지람만 한 바가지였다. 동네는 발칵 뒤집혔고 돈의 주인은 금방 밝혀졌다. 그 돈은 윗동네 김씨 아저씨가 논산 장에 소를 내다 판 돈이었다. 함께 살던 소를 팔고 섭섭한 마음에 술 한잔 걸쳤는데 집에 오는 중에 잃어버린 것이었다. 초저녁 답박골 골짜기는 꼬맹이들 콧물 섞인 울음으로 가득 찼다. 한동안 꼬맹이들은 돈을 반으로 자른 ‘미련한 놈들’로 동네의 놀림감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돈을 주워 어른들께 가져다줬으면 잘했다고 칭찬도 받고 다만 얼마라도 사례를 받아 눈깔사탕 하나라도 사 먹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참 미련한 놈들이었다.
이게 다 유치원을 검정고시로 패스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나의 미련함을 덮어 보고자 한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나는 돈을 물쓰듯 써보지는 못했어도 돈을 칼로 무 자르듯 썰어 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