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껌 만들기 도전기

새마을운동에 방치된 유년시절 2

by 청년홈즈

“누가 내 껌 떼어갔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벽부터 보았다. 잠들기 전 붙여 두었던 내 껌이 없어졌다. 용의자는 누나 아니면 남동생이다.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남동생 입이 오물거린다. 동생 입을 잡고 씹던 껌을 다시 빼앗아 내 입에 넣었다. 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형이 사다 준 껌 한 통 때문에 일어난 껌 쟁탈전의 전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설마 더럽게 그랬을까’ 생각하겠지만 분명 내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실화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꼬맹이들에게 껌은 엄청난 군것질거리였다. 단물만 빠지면 뱉어 버리는 요즘 껌을 생각하면 안 된다. 10원짜리 ‘오렌지 껌’ 한통(3개 들었었음)이면 동네 아이들에게 일주일은 거뜬히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에게 껌이란 그냥 심심풀이가 아니라 며칠을 씹으며 놀 수 있는 장난감이었고 동네에 나가면 아이들에게 ‘나 귀한 껌 좀 씹는 애야’라는 자랑거리였다.


오렌지껌.jpg 오렌지 껌 포장지: 한 통에 10원, 3개가 들어 있었다.


금강 얼음도 녹아 얼음 배 타는 놀이도 끝나고 누나들이 봄나물을 캐러 다닐 무렵이었다. 여전히 어른들은 새벽종이 울리면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길을 넓히러 나갔다. 겨우내 숨죽였던 대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이곳저곳 삐쭉 빼쭉 초록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즈음, 허풍 대장 박살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엄청난 비법 하나를 공개했다.


“야 니들 끔 씹고 싶지?”

“오늘 하루, 내 말 잘 듣겠다고 약속하면 끔 씹게 해 줄게”

꼬맹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려줘~ 알려줘라~”

“그럼 니들 내가 알려줬다고 말하면 안뎌. 알것지?”

“알았어”

우리는 기대를 가득 안고 박살을 따라 강변에 있는 밭으로 갔다.

“야 이 풀이 끔 만드는 풀이야”

“이거 우리 성이 알켜 줬는데 진짜 비밀이다”

껌 만드는 풀은 동네 밭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늘 보던 풀이었다.

“야 이 풀이 진짜 끔 만드는 풀이라고?”

“못 믿겠으면 너는 빠져”

박살의 한 마디에 우리의 의심은 멀리 날아갔다.


우리는 박살의 지시대로 껌 만드는 풀을 욕심껏 뜯었다. 그 풀을 한아름씩 안고 우리는 동네 큰 다리 밑으로 숨어들었다. 박살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씹으며 고인 물은 뱉어 내. 계속 씹으면 끔이 디는 거여”

“야 근디 이거 너무 쓰다. 진짜 끔 되는 거 맞지?”

“야 끔이 그렇게 쉽게 되면 왜 비싸겠냐?”


“병호야~ 병호야~ 저녁 먹어라”

각자 집에서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부름이 없었다면 아마도 밤새 다리 밑에서 내 입은 껌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푸르뎅뎅 물든 내 입을 보고 엄마는 기겁을 했다.

“아이고 이 미련한 놈아. 풀 씹으면 끔 된다고 누가 그려?”

나는 혼나면서도 누가 그랬는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한바탕 혼쭐이 나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풀만 씹어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막상 저녁밥은 한술도 뜨지 못했다. 혀가 얼얼해 밥맛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찔한 시절이었다. 만일 내가 그때 씹었던 풀이 독풀이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자연에서 키우는 것이 정서발달이나 교육적으로 좋다고 하지만 그 시절 새마을운동 속에 묻혀 방치된 내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상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깡촌이었다고 하나 내가 방치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근 18년 동안 교육 업을 해오면서 깨달은 것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다. 특히 공교육에 편입되기 전 적기에 필요한 교육적 환경 제공을 하지 않는 방치도 폭력이라는 생각이다. 국가는 항상 소외된 계층 속에 방치된 아이들이 없는지 살필 일이다.


※껌의 유래: ‘고대 그리스인은 유향수(mastic tree)에서 나오는 수지를 씹었고, 고대 마야인은 사포딜라(sapodilla) 나무에서 나오는 치클(chicle)을 씹었으며, 북미 인디언은 가문비나무의 진액에 밀랍을 섞어 씹었는데 미국의 정착민들이 씹은 최초의 껌이 바로 이것이었다. 세계적으로 껌의 역사는 아주 길고, 그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업적으로 판매된 최초의 껌은 1848년 존 커티스(John B. Curtis)가 미국 메인 주의 가문비나무로 만든 천연 껌이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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