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꽃 필 무렵, 실패한 쿠데타

가난 속에 방치된 유년시절 3

by 청년홈즈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의 골목대장은 수시로 바뀌었다. 대여섯 살 때쯤이면 하루가 달리 성장할 시기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장기 집권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보다 한 살 위인 세빵(별명)이 그랬다. 그 친구가 장기 집권하는 사이 나머지는 감히 대장을 꿈꾸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감자 꽃이 하얗게 강변 밭을 물들 일 무렵 우리는 작은 쿠데타를 도모했다.


곤궁했던 시절 서리에 대한 추억은 한두 번씩 있으리라. 보리타작이 끝나갈 즈음 우리 동네 강변에는 하얀 감자 꽃이 흐드러지게 뿌려진다.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 꼬맹이들 배는 늘 먹거리를 찾았다. 고종사촌 형과 함께 강변에서 하루 종일 놀던 꼬맹이들 배도 그날따라 꼬르륵거리며 심하게 먹거리를 찾았다. 누군가 분위기를 띄웠다.

감자꽃.jpg 배고픈 시절 우리를 유혹하던 하얀 감자 꽃


“야 저기 하지감자 서리해 먹을래?”(우리 고향에선 감자를 하지감자라 불렀다)

“들키면 어떻게 해?”

“야 왜 들켜. 살짝 캐고 다시 묻어 놓으면 몰라”

그때 고종사촌 형도 거들었다.

“내가 망봐 줄 테니 갔다 와”


배고픔은 결정을 쉽게 했다. 멀리서 고종사촌 형이 망을 보고 우리는 감자 밭으로 기어 들어갔다. 꽃이 하향게 핀 감자줄기 밑에는 튼실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문제는 처음으로 서리하는 꼬맹이들의 미련함이었다. 서리 방법을 몰랐던 미련퉁이들은 감자를 따고 줄기를 살짝 묻어놓으면 표가 안 나는 줄 알았다. 띄엄띄엄 뿌리에 손을 넣어 한 그루에 한두 알만 떼어내야 하는데 밭고랑을 모조리 파헤쳐 캤다. 서리라는 것이 감자 몇 알이어야 하는데 꼬맹이들의 배고픔은 그 양 조절에 실패했다. 욕심껏 캐고 보니 한말도 넘었다. 캐낸 감자줄기를 살짝 묻어 놓으니 감자 밭은 말짱해 보였다.

“야 표 안 난다 그치?”

우리는 그 감자가 쭉 그 모습일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


강변에 불을 펴고 하지감자를 구웠다. 감자가 익어가는 사이 고종사촌 형의 배후 조종이 시작되었다.

“니들 대장이 누구냐?’

우리는 손가락으로 세빵을 가리켰다.

“그래 니들 중에 대장 하고 싶은 사람 없어?” 그때 박살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알았어. 오늘부터니가 대장 해. 이제 명령해봐”

박살은 조그만 소리로 우리에게 명령했다.

“야 오늘부터 내가 대장이다. 니들 세빵을 강물에 던져 넣어라”

완벽하게 세빵을 제압하기 위한 첫 명령이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 세빵의 팔다리를 들었다. 세빵은 살려 달라며 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박살의 하루짜리 쿠데타는 성공했다.


먹다 지쳐 남은 하지감자를 감춰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에 검댕을 잔뜩 묻히고 돌아왔지만 엄마는 몇 마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정도 감자 서리를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다음날 온 동네는 난리가 났다. 고개 너머 사는 배후 조종자 고종사촌 형은 이미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하지감자 주인아저씨가 줄줄이 꼬맹이들을 엮어 우리 집까지 왔다. 우리는 굴비 엮이듯 아저씨에 끌려 사건 현장에 당도했다. 어제까지 말짱하던 하지감자 밭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감자 밭 반이 넘게 감자 줄기가 시들어 꼬부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다. ‘어제 분명 말짱했었는데’ 우리의 미련함은 끝까지 상항 파악을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어마무시 혼났고 어느 정도 감자 값을 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뒤로 우리 꼬맹이들은 동네 요주의 인물들로 찍혀 크고 작은 서리(아마도 위에 형들이 했을)가 있을 때마다 용의자가 되어야 했다.


다음날 큰 다리에 모였을 때 우리 서열은 싱겁게 원래대로 복귀되었다. 고종사촌 형이 없어지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무 일 없듯 원래 대장에게 굴복하였다.


우리들의 첫 감자 서리는 그렇게 상처투성이 기억을 남겼고 박살과 그 일당의 하루짜리 쿠데타도 그렇게 끝났다.


p.s:방치되었던 내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여러 생각이 든다. 누굴 원망하지는 않지만 내 교육의 불평등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졸저(초등 전에 키우는 내 아이의 가능성)에서 주장했듯이 교육의 결정적 시기는 0세~7세까지라는 생각이다. 나는 국가는 0세부터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치원 교육은 국가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유아교육에 개입해야 한다. 소득 3만 불 시대라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방치된 아이들이 많다. 방치도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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