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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un 12. 2022

‘백탑파’를 그리며

마음을  잡으려 지난 글을 꺼내노라(2016.10.14)

※전주에서 국수장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었지만 팔자에 없는 국수장사를 하려니 매일매일이 고난의 행군이었다. 잡생각을 잡으려  100일 글쓰기를 하며 잡생각과 싸우며 버텨냈다. 그 100일이 150일이 넘어 끝났었다. 그때 썼던 글(독후감)을 꺼내 읽으며 요즘 잡스런 생각으로 꽉 들어찬 마음을 잡아 보려 한다.


'백탑파'를 그리며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얻게 된 책이다. 일반적인 글쓰기 책이라 생각하고 샀는데 읽어보니 소설 형식의 조금은 독특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불편했는데 앞부분을 읽어 가다 보니 한 권 전체를 번개 같이 독파해 버렸다. 이런 좋은 책을 써준 설흔, 박현찬 두 분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을 덥석 집어 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목에 들어간 연암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글쟁이 꿈을 갖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연암을 비롯한 백탑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백탑파 중에 특히 이덕무는 내가 흠모하는 롤모델이다. 연암을 따라가며 읽는 내내 나도 백탑파 중 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연암과 어울리던 무리는 명문가 자제인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등 대개가 서얼이었다. 그들은 실력은 있으나 입신양명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양반들은 그들을 멀리했지만 연암은 내치지 않았다. 내치기는커녕 함께 노래하고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가까이 어울렸다. 연암은 그들이 좋았다. 지위나 가문이 아니라 책과 술을 식량 삼아 읽고 마시며 살아가는 그들이 싫지 않았다. 과거 따위에 목숨을 거는 무리보다는 한량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훨씬 더 편하고 좋았다.’

-본문 중 발췌


30대 중반 우연히 읽었던 ‘책에 미친 바보’라는 책을 읽고 이덕무와 그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내 꿈은 이덕무와 친구들이 함께 지은 ‘청장관’ 같은 사랑방을 갖는 것이 되었다. 대학교 때부터 함께한 몇몇 친구들과 이 꿈을 나눴고 이 꿈은 우리들의 공동 목표가 되었다. 그 꿈이 깨지지 않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니 참 다행이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방은 연암과 이덕무의 친구들이 즐겼듯 책과 술을 식량 삼아 세상을 읽고 논하며 노래하고 마시며 노는 우리들의 자유공간이 될 터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모은 돈은 없지만 벌써 몇몇은 실행만 하면 동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으니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의 사랑방은 만들어지리라 굳게 믿는다. 나중에 사랑방이 생기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놀러 와도 된다. 그 사랑방은 누구나 와서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 둘 작정이니까 말이다.


얼마 전, 연암이 열하일기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열하일기는 그저 북경 여행기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암은 그 당시 평균 연령으로 보자면 꽤 많은 나이인 불혹을 넘긴 나이에 형을 따라 꿈에 그리던 북경에 가게 된다. 그 당시 북경 길은 몇 달을 가야 하는 험난한 길로 목숨을 내놓고 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연암은 북경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엄청난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실로 대단한 열정 가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열하일기다. 그 당시 열하일기가 지식인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연암의 이런 도전정신에서 나오는 신선한 문체와 탁월한 글 솜씨 때문이었다.


‘이명을 가진 이나 코를 고는 이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장도 마찬가지지.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면 그것은 바로 귀가 울리는 자가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썼기 때문이고, 자기 글을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비평하는 데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슨 소리일 줄도 모르고 글을 썼기 때문이지. ‘

-본문 중 발췌


이 책은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팩션(faction)이기 때문에 약간의 허구가 가미되었지만 남겨진 연암의 저작물들을 보면 이 책에서처럼 평생 새로운 글쓰기 형식에 고민했던 것 같다. 연암의 말처럼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확실해야 한다. 세상을 제대로 꿰뚫어 볼 균형 잡힌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명을 가진 자나 코골이를 하는 자가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쓴 글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했듯 글은 ‘붓 끝을 도끼 삼아 거짓된 것들을 찍어버릴 각오’로 써야 한다. 연암은 아마도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불혹을 넘긴 나이에 그 위험한 북경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내려놓으니 연암의 기운을 받았는지 갑자기 사그라들던 쓰고 싶은 마음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일렁인다. 사랑방에 놀러 오는 친구들과 글에 대해 한 마디 이야기라도 풀려면 어느 정도 글 솜씨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덕무가 ‘청장관’에서 고민하며 썼던 ‘청장 관전서’쯤은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의 글이라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 생각하니 참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오늘 밤도 일찍 자긴 글렀구나’


※붙임 글: 독서 후기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연암의 글들을 이해하려면 연암이 가진 글에 대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물 가운데 귀천과 빈부를 기준으로 높낮이를 정하지 않은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이인로가 했다는 이 말속에 연암의 문장에 대한 철학을 볼 수 있다. 세도정치가 판을 치던 혼란의 조선 후기 정치에 염증을 느낀 연암은 이제는 문장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혁명적 생각을 했다. 연암의 이런 생각은 그가 교류하던 백탑파에도 영향을 끼쳐 연암과 그의 친구들은 새로운 학맥을 형성하며 우뚝 서게 되었다. 후세는 그들을 북학파니 실학파니 하며 이름 짓기 좋아하지만 그들의 원했던 것은 이러한 이름보다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연암 따라 하기 1: 정밀(精密)하게 독서하라.

연암은 느리게 독서할 것을 주문한다. 느리게 독서하기란 속도를 내지 말고 한 자 한 자 글을 음미하면서 읽으라는 것이다. 이유당 이덕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졸저지만 몇 권의 책을 내고 보니 글쓰기의 가장 기본은 제대로 독서임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좋은 글이든 평범한 글이든 글이란 읽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글쓰기의 지론이다. 연암도 글쓰기의 출발을 느리게 책 읽기로 꼽는다. 한 권을 독파하는데 목표를 두지 말고 ‘느리게 느리게’ 문장을 씹어 가며 독서하라.


연암 따라 하기 2: 관찰(觀察)하고 통찰(通察하라.

관찰 없이는 글을 쓸 수 없고 통찰 없이 쓰는 글은 깊이가 없다. 그러니까 관찰과 통찰은 글쓰기의 전제조건이다. 글 쓰라고 말하면 어떤 이는 말한다. “글을 쓸려고 해도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관찰이 부족한 탓이다. 모든 글의 시작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지금 당장 옆에 아무것이나 관찰해보라. 분명 쓸 거리가 나온다. 거기에 통찰을 더하면 글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 글은 좋은 글이 된다.


연암 따라 하기 3: 원칙을 따르되 적절(適切)하게 변통(變通)하라. 의중(意中)을 정확히 전달(傳達)하라.

남의 글이나 남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연암의 말대로 이명과 코골이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것이고, 코골이는 남들은 다 아는 것을 자기만 모르는 것이다. 쓰는 사람이 자신의 의중을 읽는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정밀한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 도 결국 기본기가 있은 후에 자기 글이 나올 수 있다. 시중에 나도는 글들이 많지만 가슴에 와닿지 않는 이유가 바로 기본기를 무시한 겉멋 든 글이기 때문이다.


연암 따라 하기 4: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統合的관점(觀點)을 만들라.

조금 어려운 말인데 글 쓰는 이는 어느 한 관점에 치우치면 안 된다. 연암의 설명을 빌리자면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글 쓰는 이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오류가 현상과 현상을 비교하거나 한쪽에 치우치려는 경향이다. 현상과 현상만 보지 말고 그 ‘사이(間)’를 보고 통합적인 새로운 관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한쪽만 보지 말고 전혀 다른 쪽의 생각을 제시하라는 말이다.


연암 따라 하기 5: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 수칙 11가지

 다른 건 몰라도 아래 기준대로 따라 하면 최소한 막 쓴 글이라는 욕은 안 먹을 것이다.


이치: 전체 틀

1)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져라

2) 제목의 의도를 파악하라

 혜경: 구성 방식

3) 단락 간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라.

4) 인과관계에 유의하라.

5) 시작과 마무리를 잘하라

요령: 세부 표현

6) 사례를 적절히 인용하라

7) 운율과 표현을 활용하여 흥미를 더하라.

8)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라.

9) 반전의 묘미를 살려라.

10) 함축의 묘미를 살려라.

11) 여운을 남겨라.


연암 따라 하기 6: 사마천의 분발심(奮發心)을 잊지 말라.

연암이 전하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마음가짐에 대한 가르침이다. 연암은 제자에게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심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에 대한 제자의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다.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 낼 수 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나비는 그만 날아가버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이다.’

‘아이가 나비를 잡는 마음’ 대단히 멋진 표현이다. 글을 쓸 때는 왜 이 글을 쓰는지 잊지 말고 모든 기쁨과 슬픔과 분노를 글에 녹여내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이라야 글에 생명이 붙게 되고 글에 힘이 생긴다. 그런 마음 없이 그냥 잔재주로 쓴 글은 모두 죽은 글이다.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연암이 만일 나를 만나 한마디 한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스친다.

기대는 안 하지만 아마도……이 말이었을 듯싶다.


“글로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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