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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un 12. 2022

닭다리는 왜 짠가

내가 닭을 좋아하는 이유

지난주 금요일은 엄니 제사였다. 일주일이 지나 간단한 소회를 남긴다. 


닭! 자다 가도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하는 말이다. 언제부터 내가 이리 닭을 좋아하게 된 지는 연구자료가 없음으로 그냥 어떤 유전적인 이유로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제대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지게 된 나는 방학 때만 되면 이리저리 노가다판을 전전해야 했다. 어느 해인가 여름 방학 내내 노가다판을 돌다 개강을 앞두고 고향집에 들렀다. 지금이야 자가용으로 2시간이면 휘리릭 도착하는 곳이지만 그 당시는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두 번의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지만 공주에 도착하니 2시쯤이 되었다. 배도 고프고 집에 도착할 시간도 어정쩡할 것 같아 터미널 허름한 식당에서 닭 좋아하는 자답게 반계탕을 시켰다. 자고로 뜨내기손님 상대하는 식당은 이용하지 말라고 했건만 웬만하면 맛없기 힘든 닭임에도 드럽게 맛이 없었다. 배고픔을 반찬삼아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고 늦은 오후 고향집에 도착했다. 


“배고프지?” 

대답을 사이도 없이, 엄니는 기다렸다는 듯 꽃무늬 양은 오봉에 닭백숙을 내왔다. 아무리 내가 닭을 좋아한다지만 두서너 시간 전 먹은 닭이 여전히 뱃속에서 꼬꼬댁거릴 텐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왔다. 

“아이 안 먹어! 아직 배 안 고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한 번 먹어봐”하며 엄니는 밥상을 디밀었다.

“근데 참! 이 닭 누가 잡았어?” 

“누가 잡긴 누가 잡어. 내가 잡았지. 그거 잡느라... 하… 말도 말어라. 그러니 어여 먹어” 

고향집에서 닭이 상에 올라왔다는 건 기르던 닭을 누군가 잡았다는 얘기다. 엄니는 평생 닭을 잡아본 경험이 없다.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던 닭을 오로지 아들 때문에 두 눈 질끈 감고 닭 목을 비틀었던 것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숟가락을 들었다. 여러 생각에 머리를 처박고 닭백숙을 뒤적거리는데 엄니는 옆에서 조곤조곤 닭잡기 실전 담을 풀어냈다. 평소에 모이통만 들어도 달려오던 닭들이 그날따라 눈치를 보며 모여들지 않았다. 아마도 엄니의 결연한 전투태세를 느끼고 죽음을 감지했으리라. 갈퀴를 움켜쥐고 한 놈을 추격하여 어렵사리 붙잡았고, 아버지 닭 잡던 대로 목을 확 비틀었더니 축 늘어졌다. 털을 뽑으려 늘어진 닭을 다라이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더니 갑자기 죽었던 닭이 벌떡 일어나 대나무 숲으로 도망가 버렸다. 엄니 손 힘이 약했던지라 닭은 잠시 기절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놀랬는지 한참을 주저앉아 벌벌 떨다가 간신히 일어나 다시 작대기를 들고 대나무 숲에 들어가 반나절을 더 닭과 숨바꼭질해가며 잡은 닭이라는 것이다. 


닭다리를 쭈욱 찢어 입에 넣었다. 뜨거운 닭다리 살과 함께 짭쪼롬한 맛이 입에 퍼졌다. 엄니가 잡아 준 닭은 소금도 찍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리 짠가. 후에 읽게 된 함민목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은 엄니 몫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세상에 가장 위대한 이는 어머니다’라는 명제는 불변의 진리다. 4년 전, 엄니는 내 생일 전날 돌아가셨다. 난 평생 엄니 곁에 있을 팔자다. 이제 어제부로 내 생일 주간이 끝났으니 오늘은 닭백숙이나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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