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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un 13. 2022

두 번의 생일

음력 생일, 양력 생일

1967년 6월 13일(음력 5월 6일) 초저녁,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답박골 방사티 방세칸짜리 초가 안방에서 전배근 이주영 부부 사이에 여섯째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난 시간이 정확히 몇 시인지 궁금하여(사주 볼 때 필수항목임) 이주영 여사에게 몇 번을 물었으나 시간은 모르겠고 초저녁 밖이 어둑어둑해질 때 태어났다고 했으니 오늘 6월 13일 저녁 어둑어둑 해질 때 시간을 체크하여 볼 일이다. 여하튼 그 사내아이 태어난 시절이 그 당시에는 연중 가장 바쁜 농사철(보리타작할 때이고 모내기를 막 시작할 무렵)이라 산후조리는 고사하고 사흘인가 나흘 누워있다 밭일하러 나갔다고 했다. 해마다 생일이면 농사일에 바빠 미역국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며 안쓰러워하던 이주영 여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이 아이는 원래 일곱째 아이였다. 여섯째 아이도 사내아이였는데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삼신할미가 다시 데려갔다. 증언에 의하면(1993년 이주영 여사 육성 증언) 낳은 자식 아홉 중에 인물이 가장 잘났으며 눈빛이 초롱초롱하여 살았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 아이였다고 한다. 이 증언을 들으니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심장을 때린다. 딱 일주일 본 아이 얼굴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이주영 여사님께 경의를 표하며 더불어 세상 모든 엄니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바로 위에 아이를 잃은 부부는 그 뒤 태어난 아이도 병치레가 잦아 항상 걱정을 안고 살았다. 이 사내아이가 국민학교 1학년 입학 하자마자 마을에 홍역이 돌았는데 아래 두 동생 포함 온 마을 아이들이 모두 일주일 만에 이겨냈는데 이 사내아이만 깨어나지 못했다. 부모는 바로 위에 아이 잃고 ‘또 이 아이도 잃는구나’ 생각하며 포기한 체 혼수상태인 아이를 포대기에 말아 윗목에 밀쳐 두었다. 명줄이 길었는지 이 아이는 일주일 만에 꼼지락거리며 깨어났다. 자라는 동안 이 사내아이는 먼저 간 형 덕인지 부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된다. 이주영 여사는 이 아이에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거의 매년 보약을 해 먹였다. 사내아이는 그 보약을 다른 형제들도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해인가 막내 여동생이 이주영 여사에게 “왜 엄마는 이 오빠만 보약 해줘? 나도 해줘”하며 대드는데 이주영 여사 하는 말이 “오빠는 아프잖아”였다. 어려서 아팠던 기억과 죽을 고비를 넘긴 아이를 가슴에 넣었으니 사실 크게 아픈 곳 없이 자랐건만 늘 아픈 아들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일이라 함은 태어남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만들어준 부모를 기억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답박골 방사티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이 생일을 맞을지 모르겠지만 존재를 만들어준 부모를 먼저 기억할 일이다. 양력으로는 오늘이 그 사내아이 생일이다. 


※뱀발: 웬만하면 생일 우려먹기 안 할라 했는데, 뭐 뉴스도 보기 싫고, 시절이 하 수상하니 대놓고 우려먹는다. 음력으로 지난주 6월 4일, 양력으론 오늘이 내 생일이다. 이제 양력 생일 혼생일빵 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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