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사장님! 미얀마가 그렇게 좋은가요?’
한참 미얀마 연재글을 쓸 때의 일이다. 짧은 인연이지만 미얀마 연재 글을 읽었는지 어느날 알바생이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방학 동안 동남아 배낭여행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미얀마에 대해 내가 느낀 대로 말해줬더니 며칠 후 덜컥 비행기표를 예매했단다.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몇달 후 연락이 왔다.
“사장님 미얀마 너무 좋아요. 우기(雨期)라 비는 매일 오지만 그래도 최고예요. 언능 오세요”
가기 전 미얀마에 첫날 묵을 게스트 하우스를 연결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는 좋았는데, 은근한 자랑질로 염장을 지른다. 당장이라도 달려 가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다음 기회로 미루고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동안 미뤘던 미얀마 여행 연재 글이나 쓰자고 마음먹었다.
미얀마 못다한 이야기들
못다한 이야기 1> ‘큰 달걀에 화장을?’-삐잇 따잉 타웅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6시간이 넘는 장거리를 날아와 늦은 밤 양곤 국제 공항에 안착했다. 쌓인 피로 때문에 미얀마와는 반갑다는 인사도 못한 채 호텔로 직행하여 물먹은 솜처럼 쓰러졌다. 짧은 잠으로 양곤의 아침을 맞으며 호텔로비로 내려와보니 어젯밤 그냥 지나쳤던 독특한 형상이 서있다.
‘저건 뭐지? 아니 왠 달걀에 화장을 해놓은 거야?’
달걀모양의 커다란 얼굴에 빨간색 옷을 입고 화장한 모습이라니 참으로 괴이하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공룡 알 같은 물건을 호텔 로비에 떡 하니 앉혀놓다니.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야?”
“저거요? 저거는 삐잇 따잉 타웅이예요. 한국 이름으로 하면 오뚝이”
“오잉? 계란인 줄 알았는데 오뚜기라고?”
아침 먹으며 가이드에게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삐잇 따잉 타웅!’
“저것은 미얀마 사람들의 자존심 같은 상징물입니다.”
“삐잇(던지다), 따잉(할 때마다), 타웅(넘어지지 않고 바로 세우다)라는 뜻이지요.”
미얀마 사람들은 이 ‘삐잇 따잉 타웅’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나중에 재래시장에서 보니 이곳 저곳에 작은 ‘삐잇 따잉 타웅’을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던져도 무너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살아가면서 어떠한 힘든 일이 있어도 무너지면 안 된다는 그들의 정신을 담았기 때문이리라. 미얀마에 가면 우리나라에서처럼 카레봉지에 그려진 것 말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실물 오뚝이를 볼 수 있다. 정말이다.
못다한 이야기 2> 바간의 래커웨어(Lacquerware) 장인 나잉(Naing)씨
바간 투어 할 때는 전기자전거를 빌려 ‘맘 가는 대로’ 투어를 하기로 했다. 전기자전거라고 했는데 처음 타보는 이 물건은 자전거 같기도 하고 오토바이 같기도 해 타는 재미가 솔솔 했다. 올드바간과 뉴바간을 넘나들며 뻗어 있는 길을 폭주족이라도 된 듯이 핸들 가는 대로 돌아 다녔다. 한참을 달리다 더위를 피할 양으로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천천히 마을을 돌다 보니 사람들이 민속공예품 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무심코 들어 갔는데 너무 적극적인 영업을 해오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 명함을 건네며 소개를 한다. ‘MOON’이라는 상호로 미얀마 토속 공예품 래커웨어(Lacquerware)를 만드는 ‘나잉씨 가족(Naing Family)’이었다. 래커웨어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특산품 중 하나로 대나무를 얇게 깎아 물건을 만든 뒤 문양을 내고 색칠을 한 수공예품이다. 나잉씨의 화려한 영업 기술에 결국 공예품을 사게 되었다. 여러 가지 물건이 있었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소주잔으로 제격일 것 같은 작은 잔이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를 깎아 옷칠을 하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입힌 아주 예쁜 잔이었다. 돌아올 때 보니 공항 면세점에서도 팔고 있었는데 ‘나잉’씨한테 사길 잘했다. 공항은 내가 샀던 가격의 3~4배 가격이었다.
’나잉씨 고마워요!’
못다한 이야기 3>최강 동안의 나라 or 최강 노안의 나라
미얀마 사람들의 첫 인상은 대부분 사람들이 미소 때문에 그런지 착해 보이면서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리고 체격이 작고 얼굴이 작은 편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 격이라는 유자나플라자 투어를 하는 중에 겪은 실수담이다. 작고 귀여운 소녀가 있어 초등학생 정도로 생각하고 약간 어린애 대하듯 나이를 물었다. 왠걸 ‘21살’이라고 했다. 정말 깜짝 놀라 당황스러웠다. 그 사건 이후로 아무리 어려 보여도 절대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반대의 경험도 있는데 냥쉐에서 따웅지 가는 라인까를 탔을 때이다. 콩나물 시루처럼 끼여 타고 가면서 옆에 있던 50대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랑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아뿔사 얘기해보니 나보다 어린 43살이라고 했다. 그 분은 나를 젊은 총각쯤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분한테는 차마 내 나이를 말하지 못했다. 주관적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미얀마는 20대까지는 최강 동안의 나라가 되고 30대이후는 최강 노안이 되는 나라 같다.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동안인 이유는 특히 여성들의 경우 큰눈과 작은 얼굴 그리고 타나까를 발라 피부가 부드러워져서 그런 것 같고, 노안의 이유는 미얀마의 강렬한 자외선 아래 일을 너무 많이 한 이유와 꾸미지 않은 너무도 수수한 모습도 한 몫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냥 추정일뿐.
못다한 이야기 4>보석의 나라 미얀마-세계 최고의 루비 산지 모곡(Mogok)을 아십니까?
만달레이를 방문했을 때 만달레이 상공회의소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얀마 보석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수몬토(Ms. Su Mon Toe)라는 젊은 여사장님을 만났는데 글 쓰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명함을 주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미얀마 보석에 대해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특히 모곡(Mogok)지방에 대해 반드시 소개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곳에서만 나는 루비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Pigeon’s blood로 부르는데 짧은 영어 실력인데도 열정적으로 자랑하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행 중 모곡지방은 가보지 못했다. 보석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관심도 많지 않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본다. 대신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약속을 지키려 한다. 사실 미얀마는 루비 외에도 대단한 보석의 나라임을 가이드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실제 만달레이 근교 제이드 가공단지를 방문하기도 했고 양곤의 보족시장에서도 수많은 보석과 제이드를 만났지만 보석에 별 흥미가 없어 그 가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다만 미얀마와 근접해 있는 중국인들이 미얀마 제이드를 워낙 좋아해 오로지 제이드 쇼핑을 위해 넘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보석의 나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못다한 이야기 5>평화를 빕니다.
지난 2021년 2월 미얀마에 군부쿠데타가 발생했다. 어언 1년 9개월이 지나간다. 군부의 총칼에 그동안 수천명의 미얀마인들이 희생되었고 지금도 죽어 가고 있다. 미얀마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잔인한 군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잊혀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주의 비극을 기억하는 우리는 미얀마의 고통을 외면하면 안된다. 군부쿠데타에 코로나까지 미얀마는 이제 가고 싶어도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비극을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길은 미얀마라는 나라를 잊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작은 마음에 그 동안 묵혀 두었던 여행담을 꺼내 본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들을 통해 미얀마문화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미소가 많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글이 작은 파동이 되어 미얀마에 작은 희망의 빛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