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독특한 얼굴, 두 번째 - 치마 입은 남자, 론지(Longyi)
치마 입은 남자들
치마와는 거리가 먼 내가 처음으로 치마를 입어 본 건 대학 1학년 때다. 5월 대동제 때 동아리 주최 마당극을 올렸는데 내가 맡았던 역할이 여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동기들이 여주인공 역이 부담스럽다며 안 한다는 바람에 나에게까지 밀려온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하겠다고 나섰다. 세상 무서울 게 없던 파릇파릇 스무 살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처음으로 얼굴에 화장을 하고, 가발도 쓰고, 누나 치마를 빌려 입고 공연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치마는 생각보다 편했고 아랫도리가 시원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나라 남자라면 평생 한번 입어 볼까 말까 한 치마를 매일 입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미얀마 남자들은 매일 치마를 입는다. 미얀마의 독특한 첫인상으로는 타나카 여인의 얼굴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강렬하게 남는 것은 치마 입은 남자들 모습이다. 처음 치마 입은 남자들이 도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이국적이고 생경스러운 모습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젠가 TV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치마 입은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본 적이 있지만 미얀마 남자들의 치마 입은 모습은 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화려하지 않은 남자들 치마는 불편해 보이지 않았으며 우리처럼 명절 때만 잠시 입는 옷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입는 평상복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방인에게는 낯선 모습이었지만 론지는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이고 삶이었다.
이처럼 미얀마 사람들에게 전통은 자존심이고 그들의 삶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전통을 입고 전통을 바르고 전통을 먹는다. 미얀마에서 전통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흐름 속에 고루하고 개선해야 하는 것쯤으로 치부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들의 전통복장인 론지(Longyi-롱지라고도 발음한다)도 그렇다.
미얀마인들의 일상복 론지(Longyi)
론지는 미얀마의 전통 의상을 통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더 자세하게 구분하면 남자가 입는 론지는 빠소(paso 바쏘라고 발음하기도 함)라고 부르고, 여자가 입는 론지는 트매인(htamein)이라고 부른다.
자세히 보면 남자가 입는 빠소와 여자가 입는 트레인은 약간 다르다. 남성용 론지는 격자 줄무늬가 있는 청색 계열이나 갈색 계열 등의 단순한 색으로 디자인되어있다. 여성용 론지는 색이나 모양이 남성용보다 훨씬 화려하고 다양하다. 여성용 론지는 언뜻 보면 일반 치마처럼 보여, 전통 의상이지만 특이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론지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이 최신 유행의 스마트폰과 핸드백을 메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론지를 입은 모습은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
처음 미얀마 여행 시 양곤의 차이나타운 근처를 방문했을 때다. 거리는 오전부터 내린 비로 이곳저곳에 웅덩이가 생겨 흙탕물과 오물들이 뒤섞여 지저분했다. 트럭 옆을 지나는데 웬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멈칫했다. 자세히 보니 소변을 보고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오기 전에 미얀마 남자들은 앉아서 오줌을 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겪어보니 훨씬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앉아서 뭔가를 해결하는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지저분한 양곤 거리가 꼭 흙탕물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추측을 했다.
처음 여행 시 양곤에서 인레로 들어가는 심야 VIP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는 집단으로 앉아서 오줌 누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근 12시간을 달리는 심야 버스는 식사를 위해 두 번만 휴게소에 들렀다. 중간중간 급한 볼 일이 생기면 조수에게 말을 해 적당한 곳에 잠시 정차했다. 조수들을 보니 '안 계시면 오라이~'하던 예전 우리나라 조수 누나들이 생각났다. 밤공기를 가르며 꼬불꼬불 길을 달리던 버스가 잠시 정차하면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가 여기저기 앉아서 볼 일을 봤다. 그들 속에 섞여 유일하게 나만 서서 볼 일을 보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상당한 문화 충격이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도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탔는데 도로 사정이 더 좋아진 것인지 VIP버스라 그랬는지 휴게소에 정차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편했다.
그 치마 나도 한번 입어 보았다.
미얀마 남자들의 그 치마를 첫 방문 때 양곤의 유자나 플라자에서 제대로 한번 입어 보았다. 유자나 플라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쯤 되는 곳이다. 론지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가게 앞이었다. 아줌마는 론지 가격을 6, 000짯이라며 우리를 붙잡았다. 현지 가이드가 알려준 가격을 알기에 발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관광객을 '봉'으로 아는 아줌마는 집요하게 6,000짯을 부르며 막아섰다. 무엇이든 생존 본능으로 쉽게 습득하는 촌놈답게 흥정을 시작했다. 3,500짯을 불렀다. 아줌마는 계속 안 된다고 하더니 다시 돌아서려니까 OK사인을 보냈다. 흥정 성공! 어떤 일이든 협상과정에서나 서로 밀당이지 그 후에는 모두 친구가 된다. 우리는 가게 주인아줌마의 도움으로 론지를 입고 그 자리에서 어설픈 패션쇼를 펼쳤다. 낯선 이방인들의 어색한 론지 패션쇼에 시장통은 하하호호 웃음바다가 되었다. 날림으로 동여맨 론지가 흘러 내려갈 때마다 시장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좋아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먼 나라 손님에게 다가와 론지 입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한마당 공연이 끝난 후 돌아오니 몇몇 일행이 론지를 사고 싶다고 하여 그 아주머니에게 3명의 손님을 더 끌어다 주었다. 아마도 양곤의 유자나 플라자에서 활약한 한국인 최초의 '호객꾼'이 아닐까 싶다. 값을 깎아주었던 아줌마나 한바탕 웃음보따리를 덤으로 받은 우리나 손해 보는 흥정은 아니었던 셈이다.
미얀마에 가게 되면 론지는 꼭 한번 입어 보길 권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방인이 자신들의 전통 복장을 입은 모습을 무척 좋아하고 신기해한다. 미얀마와 몇 배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외국인이 한복 입은 모습을 보았을 때 느낌을 생각해보면 된다. 론지를 실제 입어보면 생각보다 편하고 시원하다. 아랫도리로 지구에서 올라오는 우주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뭐 뻥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안 입어본 사람은 그 시원함과 편안함을 절대 모른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것
몇 년 전 한국, 미얀마 정상회담 자리에 론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미얀마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간 보았던 정상회담 자리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당시에는 좀 경박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국가수반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춘 그들의 전통 복장이었던 것이다. 정상 간의 만남에서 자기 나라의 자존심을 입고 나온 미얀마 대통령을 생각하니 우리 대통령도 외국 방문 시 양복보다는 우리 한복을 입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론지를 말하다 보니 장롱 속에 잠자고 있는 내 한복이 떠오른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은 그 뒤로 어머님 회갑과 칠순 잔치 때 말고는 입은 기억이 없다. 한복은 이미 몇 년에 한두 번 정도 입어보는 행사용 옷이 된 지 오래다.
수백 년 된 전통을 이어오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존심이라는 것을 아는 미얀마라는 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이는 개발이 늦어서 그렇다고 폄하할지 모르나 내가 본 미얀마 사람들은 개방이 더 되고 경제성장을 이룬다 해도 그들의 전통을 지켜가리라 믿는다.
타이트하게 쫙 빼 입은 론지를 입고, 허리춤에 최신 휴대폰을 꽂고, 주머니처럼 만든 볼록하게 여민 앞부분에서 꽁야를 하나 꺼내 씹으며 가던 양곤의 청년이 떠오른다. 전통과 현대 문물을 지혜롭게 조화시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미얀마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장차 아시아의 용이 될 미얀마의 잠재력 아닐까?
그나저나 아랫도리가 엄청 시원하고 광활한 우주가 편안하게 받치는 느낌을 주었던 론지는 또 언제 입으러 갈 수 있으려나.
코로나 시대를 겪고 보니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여행하던 시절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시절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