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홈즈 Feb 09. 2023

다시 불광불급(不狂不及)

나도 사랑방을 짓고 싶다

오래간만에 페북 순례를 하다가 페친 류근 시인이 올린 글에 번뜩 책장을 뒤졌다. 글에 언급된 ‘미쳐야 미친다/정민 저’라는 책을 찾아 펼쳐보니 2004년 전주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그때는 직장생활 10년 차로 전주 파견근무시절이었고,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무기력증에 빠져 살고 있었다. 이 책을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은 없지만 나른했던 당시 삶에 ‘쾅’ 때리는 울림을 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때 딱 꽂힌 ‘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는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독서광이라 자부했던 나에게 ‘백이전’을 11만 3천 번 읽고, 10만 번 읽은 책이 수두룩했다던 김득신이나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의 이야기는 나를 쪼그라들게 했다.

아무튼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이 한 단어를 발판으로 무기력했던 나는 발딱 일어섰다. 이 책은 한동안 내가 속한 조직원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불광불급’이라는 단어는 내부 교육자료의 키워드가 되었다. 그 영향이었는지 이후 10여 년간 회사에서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때 열정적으로 미쳤던 나는 어디로 가고 이제 백발의 중늙은이만 무기력하게 앉아 있구나. 책을 펴고 다시 읽어 나갔다. 어떤 글은 기억이 나고 대부분 글들은 처음 읽는 것과 같다. 한 사흘 붙잡아 읽고 나니 솔직히 감동이나 뭐 그런 것은 예전만 못하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세상에 더 능글맞아져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 읽었을 때 박혔던 ‘不狂不及-미쳐야 미친다’는 문구는 다시 내 머리와 심장을 때린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실학파로만 알았던 이덕무의 삶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이후 그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이덕무와 청장서옥 동무들인 ‘백탑파’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내 주변 동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이덕무와 백탑파 동무들이 지었던 ‘청장서옥’ 같은 ‘사랑방’ 하나쯤 짓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 이후 나는 주변 동무들에게 술만 먹으면 이 꿈에 대해 떠들었고, 그런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동무들과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사랑방’을 짓지 못하였다. 이제 조금 생각을 바꿔 잔머리를 굴려본다.

‘꼭 내가 지어야 하나, 동무들 중 돈 많은 자가 지으면 그만이지’

이 글을 읽는 내 동무들이여! 내 눈치 보지 말고 얼른 사랑방 지어라. 같이 놀게


그나저나 내 심장은 다시 ‘불광불급不狂不及’으로 뛰기 시작하는데 어디에 미쳐야 할꼬?

오늘이 모란 장날이구나. 에라~ 일단 책거리나 하러 가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도 문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