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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Mar 03. 2019

아까운디 쫌만 더 있슈

내 고향 웃픈 이야기 1

내 고향 청양은 오지 중에 상오지다. 지금이야 다리도 놓여 있고 맘만 먹으면 시내(부여, 청양, 공주)까지 차로 20여분이면 나 갈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섬 같은 동네였다. 행정구역으로는 청양군이지만 생활권은 부여나 공주에 가까웠다. 앞은 금강이요 뒤편은 첩첩산이니 웰컴투동막골이 따로 없다. 실제 6.25 전쟁 때도 인민군이나 군인들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고 하니 전략적으로나 뭐로나 그리 중요한 지역이 아닌 곳은 분명하다. 


우리 동네 주생활권은 부여였다. 동네 사람들은 5,10장으로 열리는 부여장을 주로 봤다. 장날 아침이면 촌동네가 시끌벅적해진다. 별 소일거리 없었던 시골에서 장날은 작은 소풍이나 마찬가지로 조금은 들뜨게 하는 날이다. 다들 나름대로 차려 입고 보따리 한두 개씩 이고 들고 장 보러 나섰다. 동네 아줌마들은 장도 보고 미장원에 들러 머리도 하고 시간이 되면 오래간만에 뜨신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아저씨들은 작당을 하고 점심때부터 국밥 집에 눌러앉아 반주를 핑계로 술판을 벌인다. 내내 성님 동상하면서 즐겁던 술판은 석양이 물들쯤이면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니놈 나이가 몇이냐?”며 멱살잡이로 장을 파하곤 한다. 그래 봐야 다음 장날 또 술친구 할 거면서 말이다.


어느 나른한 늦은 봄, 부여장에 간 청양댁(가명)은 큰 맘먹고 목욕을 하기로 했다. 그 당시 목욕비는 3천원쯤 했는데 돈이 아까워 자주 하지 않는 목욕이었다. 오랜만에 뜨신물에 몸을 담그니 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며 세상 편해졌다. 청양댁은 나른함을 맘 것 즐겼다.

“인자 나가자구” 한참 편안함에 취해 있는데 같이 온 정산댁 성님이 흥을 깼다.

“아이구 성님! 오랜만에 오니께 시원허니 참 좋네요. 근디 목욕비가 겁나 비싸잖유. 아까운디 쫌만 더 있슈”

“아이구 나 바뻐. 그럼 나 먼저 나가네”

정산댁은 청양댁을 두고 먼저 나왔다. 홀로 남은 청양댁은 본전을 뽑겠다며 온탕 냉탕 사우나를 들락이며 오후 내내 목욕탕에서 소일했다. 


반나절을 보내고 목욕탕을 나온 청양댁은 막차를 타지 못했다. 시간이 늦어서가 아니고 하루 종일 목욕탕에서 뒹굴다 진이 빠져버린 탓이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목욕탕을 기어 나온 청양댁은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눈앞에서 막차도 보내고 결국 택시를 대절해 무려 1만 5천원을 내고 집으로 실려 왔다. 3천원 본전 뽑으려다 5배의 택시비만 더 든 것이다.


뭐든 욕심부리면 탈난다.

사진은 글 내용과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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