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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14. 2023

이런 것까지 다 K매력?

 집 나가면 똥오줌 잘 가리기, WTA를 아시나요?

"맥주 마시고 맥주 값만큼 돈 내고 싸는 오줌이 제일 아까웠어.”

“유럽인들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오줌 값으로 1유로씩은 받아야 해" 

유럽 여행 다녀온 친구가 침 튀기며 쏟아내는 하소연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인간이 일생동안 화장실에서 보내는 총시간은 얼마일까? 대략 1년이 넘는다고 한다. 이는 평균이용시간 회당 16분, 평균 매일 4~5회, 평균 수명 80살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시간이다.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화장실의 중요성이나 가치에 대해 크게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 나가 보면 알게 된다. 외국에 나가봐야 내 나라 화장실 좋은 줄 알며 일상에서 화장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집 떠나면 똥오줌 잘 가리기’ 

내가 여행 시 지켜야 할 수칙 1번 항목이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달고 사는 나는 특히 외국에 나가면 화장실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급똥’의 습격은 아무리 멋진 여행지라도 지저분한 추억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실제로 어느 나라를 가든 내 여행담에서 화장실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한두 개씩 꼭 따라붙는다. 미얀마에 갔을 때는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 길이 무시했다가 바지에 큰일을 치를뻔했었고, 라오스에서는 야시장 투어 갔다가 화장실을 못 찾아 시장탐방도 못하고 숙소에 돌아온 기억도 있다. 지난해 다녀온 키르기스스탄 여행에서도 화장실 찾아 슬리퍼를 신은 채 소도시 변두리의 질척한 길을 뛰어다녀야 했다. 


이런 이유로 어느 나라를 가든 화장실은 내 중요 관심사가 됐다. 청결도는 기본이고 공중화장실위치 등 나도 모르게 그 나라 화장실 수준을 체크하게 되었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비교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갔던 나라 대부분은 지저분하기 그지없었고 거기에다 돈까지 내야 했다. 간혹 공짜 화장실을 만나게 돼도 청결 상태가 좋지 않아 고역이었다. 동남아 나라들 대부분도 그렇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그렇다. 한국에 사는 우리는 어디를 가든 깨끗한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으니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 실제로 우리나라 화장실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외국인들이 인천공항에 내려 첫 번째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호텔 뺨치는 삐까번쩍 청결한 공항 화장실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화장실이 처음부터 이렇게 깨끗하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개화기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은 더럽고 비위생적인 조선의 화장실에 대해 기록에 남기곤 했다. 내 기억에 80년대까지도 지저분한 화장실이 많았고 종로에는 유료 화장실이 있었다. 전북대 강준만교수는 제자들과 공저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라는 책에 ‘한국화장실의 역사’라는 글에서 우리나라 화장실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글을 소개한다. 

‘1960년대 초반까지도 노인들은 양변기를 시아버지와 며느리 볼기짝을 맞닿을 수 없다며 못마땅해했다’ 

‘1966년 9월 22일 자(조선일보) 신문에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라디오와 세면대가 달린 공중변소가 생겨 이용자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교수는 같은 글에서 국제적 망신을 당한 김포국제공항 화장실 기사(조선일보, 1968년 6월 8일 자)를 소개했는데 내용이 재미있다. 영국인 존 클레이턴 씨가 입국 터미널 변소에 들어갔다 휴지가 없자 소리를 질러 당황한 직원이 종이를 갖다 주어 용변을 간신히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불과 반세기 전 우리나라 공항 화장실도 별 볼 일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가 혁신적으로 바뀐 계기는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올림픽이 확정된 후인 1980년대 초반부터였다. 외국 손님맞이를 이유로 정부 주도 하에 대대적인 화장실 개혁정책을 펼쳤다. 이때 시작된 화장실 개혁운동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이 화장실 개선에 앞장섰는데 이런 기업들의 솔선수범은 청결한 화장실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2년 월드컵 개최는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자체별 경쟁이 붙어 질적, 양적으로 깨끗한 화장실 문화 전파에 속도가 붙었다. 당시 어떤 지자체는 1억 원짜리 초호화 고급 공중화장실을 짓겠다고 발표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지자체별 좋은 화장실 만들기 경쟁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화장실을 똥오줌 처리공간에서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의 자랑할만한 K-화장실 문화도 불과 20~30여 년 정도의 짧은 역사 속에 이뤄낸 결과였던 것이다. 


화장실 문화의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노력도 있었지만 1999년 창립된 민간단체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역할이 컸다. 이 단체 주도로 세계화장실협회(WTA:World Toilet Association)가 창설되었는데 이 민간 조직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특별협회지위를 얻었다. 사무국은 경기도 수원에 자리 잡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망향휴게소 화장실을 가보라. 세계화장실협회 창설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고향길이라는 주제로 중정이 있는 한옥풍으로 야외정원이 꾸며져 있는데 스마트 시스템으로 냉난방이 운영되며 일회용 변기커버는 기본으로 구비되어 있다. 가보면 이곳이 정녕 화장실인가 싶다. 참고로 이 화장실은 화장실 문화시민연대와 한국화장실협회가 선정한 전국 1위 화장실이다. 혹시 들를 일 있으면 꼭 가보시라. 화장실의 신세계가 열릴 것이다.


자랑할 것이 없어 화장실 자랑이라니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 나가 보면 안다. ‘집 나가면 똥오줌 잘 가리기’라는 말이 가슴에 확 와닿을 것이다. 내 나라에서 깨끗한 무료 화장실 이용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 한 조각쯤 가져보자. 


화장실문화박물관(수원): 세상에 똥 박물관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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