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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17. 2023

의衣-옷 잘 입는 한국인의 뿌리 의관정제

생활 속에 다져진 K족의 힘

한국인의 옷 하면 먼저 백의(흰옷)가 떠오른다. 이는 자연스럽게 ‘백의민족’ ‘백의종군’이라는 말과 짝을 이룬다. 우리 조상들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은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나온다. 고구려 벽화나 고려 불화 속에 종종 컬러풀한 복식을 볼 수도 있지만 벽화 속 인물들의 신분은 주로 귀족층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보면 일반서민의 옷은 그 시대에도 흰색 옷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요즘 경복궁이나 전주한옥마을에서 대여해 주는 화려한 한복들은 전형적인 백성들의 일상복은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 한복이라 부르는 색색의 옷들은 대부분은 명절이나 혼인 등 집안 대소사에 입던 예복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대부분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입었던 옷은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무명의 의병들이 입고 있었던 적삼 같은 흰색 옷이었다. 처음으로 조선땅을 밟았던 서양인들은 온통 흰옷만 입은 조선인들이 신기해 보였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조선말 기록사진들을 보면 백성들의 옷은 대부분 흰옷이다. 그러니까 좋든 싫든 조선말기까지 한국인의 시그니처 드레스코드는 ‘흰옷’이었다.

이렇게 조선인들이 흰옷을 입는 이유로 염색해 입을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였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조선인에게 가난하고 무능력한 이미지를 씌우려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의 영향이 크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이 땅 지천에 널린 게 자연물감이었을 텐데 마음만 먹으면 염색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나와 있듯 한국인은 원래부터 자연의 색인 흰색을 좋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 흰색이 주는 이미지는 순결하고 서민적이고 순종적인 면도 있지만 고급스럽고 이상향적인 럭셔리 이미지가 들어 있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에도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디자인에 무채색을 많이 사용한다. 흰옷을 그저 서민적이고 가난하고 순종적인 면만 떠올리는 것은 학창의를 입은 조선 선비의 고급스러움과 럭셔리함을 보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흰색은 사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색으로 출발과 도전의 색이다. 그 위에 어떤 색을 입히든 어떤 그림을 그리든 또 다른 세계가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의 색이다. 한국인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보는 탁월한 위기극복 문제해결 능력, 어떤 상황에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 독보적 혼종문화 창조자 등의 뿌리는 이러한 가능성의 색, 도전의 색 흰옷을 즐겨 입던 습성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학창의:흰색과 검은색의 조화

‘옷이 날개다’ 흰색이 옷의 색으로 키워드라면 한국인의 옷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바로 ‘날개’라는 말이다. 걸어 다니는 인간에게 옷 하나로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다니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옷은 단순한 추위나 부끄럼 가리개 역할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 위의 존재로 격상시켜 주는 존재다. 심지어 옷은 생명과 직결되는 먹는 것보다도 우선이다. ‘식의주’나 ‘주식의’가 아니라 ‘의식주(衣食住)’라 말하지 않는가. 이는 바로 밥은 굶어도 타인에게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인의 의관정제(衣冠整齊)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의관정제란 옷과 모자를 바르고 가지런하게 한다는 뜻으로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예의일 뿐만 아니라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시작이 옷차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조들의 옷에 대한 가치관은 현재까지 우리 문화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느낀 한국인들의 독특한 점 중 하나가 누구나 옷을 잘 입는 것과 이에 더해 옷 입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라고 말한다. 외국인들 눈에는 한국인들이 평상복인데도 파티에 가는 것처럼 차려입은 것을 보고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는 외모지상주의로 평가하며 부정적인 문화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는 옷차림을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의관정제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물론 한국인에게 외모지상주의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는 의관정제 문화가 샛길로 빠져 나타나는 지협적인 문제일 뿐이다.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것이니 샛길로 빠진 얘기 보다 옷을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생각하는 의관정제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옷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이러한 의관정제 문화는 K-유전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옷에 대한 문화유전자가 같은 한국인들은 해외에서도 딱 알아볼 수 있다. 수년 전 미얀마 여행 중 나를 보자마자 ‘안녕하세요’하며 접근했던 미얀마 마차꾼이 생각난다. 궁금해서 어떻게 보자마자 내가 한국사람인 줄 알았느냐고 물으니 ‘한국사람 옷 보면 알아, 조금 더 프리티’라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한국사람들이 옷을 잘 입어 조금 더 멋스럽고 예뻐 보인다는 말이었다. 물론 내 얼굴이 그리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옷을 잘 입는 편도 아니지만 ‘프리티 한국인’이라는 말에 괜히 어깨가 올라갔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살펴보니 한국인들은 옷 입는 스타일이 정말 다른 아시아 사람들과 조금 달라 보였다.

라오스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이다. 나무 위에서 다이빙하는 장소로 유명한 방비엥을 찾았는데 홀로 앉아 여행객들의 가만히 살펴보니 그 많은 여행객 속에 한국인들을 딱 알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 여행객들은 편한 반바지나 티셔츠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대부분 선글라스에 모자 그리고 래시가드(rashguard)를 입고 있었다. 그들 곁에 살짝 다가가 확인해 보니 십중팔구 한국인이었다. 이처럼 의관정제 문화 유전자가 있는 한국인은 해외에서 옷차림만 봐도 알아볼 수 있다. 혹시 해외 나갈 일 있다면 확인해 보라. 분명 한국인의 옷차림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의관정제문화 들어 있는 한국인의 옷 입기 문화 유전자 속에는 남들 옷 입는 것 따라 하기도 잘하고 어떤 옷을 입어도 멋스럽게 잘 차려입는다. 동묘패션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K뷰티, K패션, K미용, K헤어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옷 입기 유전자는 K팝에도 스며들어 있다. 음악도 눈으로 듣는 시대다. 요즘 K팝 아티스트들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새로운 음반 출시를 알린다. 비주얼이 우선이고 스타일이 멋져야 살아남는다. 초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출시 음반에 대한 흥행 여부에 판가름한다. 옷 입기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능력 있는 비주얼 디렉터가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담아 세팅 한 옷을 입고 날아갈 듯 펼치는 퍼포먼스에 빠져들지 않을 팬은 없다. 원래 옷 입기에 신경 쓰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거기에 전문가가 붙었으니 비주얼 최고인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코첼라 헤드라이너 공연에서 블랙핑크가 입었던 철릭 개량한복과 BTS 슈가가 대취타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곤룡포는 팬들에게 큰 화제가 되며 흥행에 한몫했다. 최근 중국이나 동남아 많은 국가에서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K팝 뮤직비디오를 따라 하고 있지만 의상에서부터 너무 수준차이가 난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수준차이가 그냥 나는 게 아니다.


옷 입기에 신경 쓰는 것을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라며 나무랄 게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 옷 한 벌을 입어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여 되도록 멋스럽고 단정하게 입으려는 한국인의 의관정제 문화를 이해하면 현재 부는 K-바람의 요인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인의 의관정제 문화 유전자는 분명 지금의 K팝이나 패션, 드라마, 영화 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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