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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18. 2023

주住-방바닥 온돌이 낳은 사랑방 문화

생활 속에서 다져진 K족의 힘

한국문화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온돌문화가 낳은 방바닥 좌식문화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서양인들 중에는 방바닥 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종종 신발을 신은 채 방에 들어가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바닥 좌식문화는 독특한 주거문화인 온돌에서 기인한다. 온돌은 아주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난방 방식이다. 벽난로로 집안 공기를 데우는 서구식은 열효율에서 한국식 온돌난방을 절대 따라오지 못한다. 온돌은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 지핀 불이 구들을 지나면서 달궈진 돌로 난방하는 방식이다. 취사와 난방을 일석이조로 한꺼번에 해결하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저녁에 한번 불을 때면 다음날까지 따뜻할 정도로 열효율이 좋고 한번 시공하면 고장이 거의 없어 반영구적인 난방방식이다. 한국인은 근대화를 이루면서 초가집을 버렸지만 이 온돌 문화는 버리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서양식 아파트를 가져왔어도 온돌을 버리지 않았다. 겉모양과 실내는 서구식으로 지었지만 방바닥만은 전통 방식을 고수한 것이다. 최초의 아파트 시공 설계 시 누가 온돌식으로 하자고 했는지 몰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인들은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어려운 시절 방바닥에 누워 지구에 기대 하루를 버텨냈다. 아무리 힘들어도 뜨끈한 아랫목이 있는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하루를 이겨냈다. 뜨신 방에서 등을 지져 본 사람은 안다. 뜨신 방바닥이 주는 힘을. 이처럼 한국인의 방바닥 온돌문화에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과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이 들어 있다. 방바닥은 비 오는 날 뒹굴뒹굴 만화책을 뒤적이는 휴식공간이기도 하며,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울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열띤 토론공간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방바닥은 그저 잠자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방바닥 온돌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구인들 눈에는 비싼 소파에 앉지 않고 방바닥에서 소파에 기대앉아 있는 한국인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온돌식 방

이러한 한국인의 방바닥 온돌문화의 정점이 바로 사랑방 문화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 사랑방의 존재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이다. 한국의 전통가옥은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바깥 채에 있는 사랑방은 특별한 공간문화를 만들었다. 안채가 주로 아녀자들의 주거 공간이라면 사랑방은 주로 남성들의 생활공간이었다. 사랑방은 정보교류의 장이고 토론의 장이었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놀던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서양에 살롱문화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사랑방 문화가 있었던 셈이다. 


지금 나보다도 훨씬 젊었던 아버지는 저녁마다 마실을 갔다.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동네 아저씨들의 아지트였던 김씨 아저씨네 사랑방으로 향했다. 동네 어른들은 농사철에는 매일 저녁 그곳으로 모였고 겨울철이면 하루종일 방바닥에서 뒹기적거렸다. 따듯한 방구들에 허리를 지지기도 하고 둘러앉아 하루 일을 돌아보고 다음 농사 계획을 짜기도 하였다. 간혹 대처에 나갔다 온 사람으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입심 좋은 동네 이바구꾼 아저씨의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깔깔거리다 보면 동네 사랑방의 밤은 짧았다. 그 날밤 이야기들은 이리저리 살이 붙어 동네 꼬맹이들 귀에까지 들어왔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인의 K-스토리텔링의 힘은 어쩌면 전국 방방곡곡 동네 사랑방에서 싹을 틔웠는지 모른다. 


조선후기 백탑파들은 이 사랑방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 사람들이다. 백탑파는 지금의 탑골공원에 서있는 원각사지 10층석탑(백탑) 주변에서 살았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을 일컫는다. 북학파, 실학파로 불렀던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대부분 사랑방 문화 출신들이다.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박지원, 홍대용...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지식인들은 모두 벗으로 교류하며 서로의 사랑방을 드나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서자이거나 벼슬이 변변치 않아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다. 주로 이덕무의 단칸방 집에 모였는데 없는 살림에 눈치가 보이자 사랑방을 짓기로 작당하였다. 그들은 각자 능력 것 한 사람은 서까래를 내고 또 다른 이는 기둥을 담당하는 식으로 십시일반 하여 이덕무네 집에 바깥채를 지었다. 그 사랑방 이름이 바로 청장서옥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는 그 사랑방에서 지었던 글을 모아 낸 책이다. 

나의 꿈 중에 하나가 바로 이덕무와 벗들이 가졌던 사랑방 같은 집을 한 채 짓는 것이었다. 꿈을 가진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나가건만 아직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꼭 지어야 할 텐데 나이만 자꾸 먹어가니 그저 마음만 바쁠 뿐이다. 그래도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동무들과 마음껏 놀 수 있는 멋진 사랑방을 갖게 될 것임을 믿는다. 혹시 이 글이 잘 팔려 나간다면 그 꿈이 더 빨라질 수도 있겠다. 


이러한 한국인의 독특한 사랑방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살아있다. 21세기 사랑방은 바로 소셜네트워크 세상이다. 인터넷 세상에 만들어진 여러 소통의 장들이 바로 현대판 사랑방인 셈이다. 눈 뜨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누르기만 하면 SNS(소셜네트워크) 세상이 펼쳐진다. 각종 플랫폼에 들어가면 온갖 세상 소식과 원하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이런 21세기 사랑방 세상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바로 방바닥 사랑방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실제로 K콘텐츠가 급격하게 성장한 것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인들이 방구석에 머물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미 그런 방바닥 사랑방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며 놀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온돌과 사랑방 문화, 방바닥 좌식 주거문화가 지금의 K-바람 속에도 분명히 들어 있다. 


☞뱀발: 세계로 뻗어 가는 K온돌

이제 세계인들도 한국식 방바닥 온돌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찜질방이 큰 인기라고 한다. 그들도 이제 뜨끈한 방바닥에 뒹굴뒹굴하며 온돌 문화의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한국식 온돌 문화는 서구의 주택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도 한국식 난방방식인 온돌 방식으로 짓는 주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주택들도 한국식 온돌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기존 주택 온돌 시공을 위해 우리나라 업체에서는 기존 난방보다 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는 모듈 조립식 온돌을 개발하였다고 하니 국뽕이 저절로 올라온다. 이제 세계인들도 온돌 맛을 알기 시작했다. 그들도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지져보면 안다. 한국인의 위대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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