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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0. 2023

모방창조의 천재들 K

K유전자의 비밀-K창조력

태초에 ‘시발’이 있었다. 

여기서 ‘시발’은 욕이 아니다.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의미의 시발(始發)이다. 전쟁으로 산업기반이 쑥대밭이 돼 버린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무엇을 새롭게 생산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인한 한국인들은 전쟁 후 버려진 군수물자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군이 버리고 간 자동차를 분해해 구조를 이해한 후 그 엔진에 굴러다니던 폐드럼통을 펴 차체를 씌워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 이름이 바로 최초의 자동차 시발이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알다시피 오늘날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생산국이 되었다. 태초에 시발이 그 힘이었다. 


자동차분야뿐만 아니라 삼성, LG 등 가전분야, 반도체 등 한국은 대부분 산업분야에서 앞선 나라들을 따라 하면서 성장했다. 사실 이런 따라 하기 전략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취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더 탁월한 모방창조 능력을 발휘했다. 이런 능력을 발판으로 전후 폐허를 단시간에 극복하고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이처럼 모방을 발판 삼아 새롭게 조합하고 창조해 내는 모방창조의 천재들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하늘아래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 진부한 경구지만 한국인에게 잘 어울리는 말들이다. 물론 모방을 남의 것을 훔치는 표절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모방이 지나치면 남의 지적재산을 훔친 절도범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따라 하되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기존의 형식을 쫓지만 똑같이 하는 것은 싫어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기존의 것을 분해하고 분석하여 내 것에 맞게 변형,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천재들이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쓸모 있게 조합하는 것이 바로 창조다. 최인수 성균관대교수는 이 같은 이유로 한국인의 창조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분석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유용하게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런 높은 창조력의 근거는 일상의 언어 습관 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습관적으로 ‘만일’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만일(萬一)은 만 분의 1이라는 의미다. 만일을 입에 달고 살다 보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만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만일 저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창조력이 안 생길 수 없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은 이처럼 일상에 흔해 빠진 것에 관심을 기울여 세심히 관찰하여, 그 안에서 문화와 역사를 캐내는 것이 창조라고 하였다.


한국인들은 일상 언어생활에도 탁월한 창조력을 발휘한다. ‘개좋아’ 그냥 '좋아'가 아니라 '개'가 붙어야 진짜 좋은 것이 된다. 요즘 MZ들의 언어생활은 이 개가 점령하고 있다. 사실 이 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욕의 주재료로 쓰인다. ‘개새끼’ ‘son of a bitch’ ‘이누(~の犬)’ ‘띤까우(電狗: 미친개)’와 같이 개는 인간과 가깝다는 이유로 동서양에서 욕 재료 신세가 되었다. 개 입장에서는 참 억울한 일이다. 한국인들도 오랫동안 개차반, 개살구, 개떡, 개복숭아, 개꿈, 개죽음, 개수작, 개망나니, 개잡놈 등 개를 욕이나 부정적인 접두사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한국인들은 이 개를 욕에서 건져 내어 한 단계 격상시켜 주었다.

‘개좋아, 개이득, 개간지, 개설렘, 개웃김, 개득템, 개대박, 개멋짐, 개이쁨’ 

한국인들은 이제 개새끼에서 개를 건져 내 기존 언어와 결합시켜 보다 창조적으로 폭넓게 쓴다.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기존형식을 파괴하고 새롭게 조합하는 ‘K창조 유전자’를 발현시킨 것이다.


창조력은 자기 해체와 자기반성을 통한 성장욕구에서 생겨난다. 그 성장욕구의 바탕이 바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다. 시련이 사람을 더 성장하게 하고 단련시킨다는 것은 맹자에도 나온다.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많은 시련과 고통으로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라면 한국인들이 살아온 역사 또한 세계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들이 창조력의 바탕이 되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탁월한 ‘K창조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K-바람’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뒤에 가(家집가) 자를 붙인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화가,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가, 노래를 만드는 사람을 작곡가라 부르며 시인, 소설가를 포함해 이 모든 예술가들을 통틀어 작가作家라고 부른다. 작가는 글자 그대로 집을 짓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 새롭게 집을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로 ‘창조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들은 모두 예술가요 작가들이라 할 만하다. 예술가적 기질이 아니라면 전후 폐허국에서 어떻게 불과 70여 년 만에 경제강국, 문화강국을 지어 낼 수 있었겠는가? ‘K콘텐츠’ 열풍은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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