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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1. 2023

한국인의 생존 투쟁 이력, 경쟁 유전자

K유전자의 비밀-경쟁 유전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한국인은 모두 이기고 싶어 한다. 아니 이겨야 산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를 혹자는 한국인의 평등주의 지향성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평등주의라기보다는 경쟁에 이기고 싶어 하는 ‘승자우선주의’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한국인은 어디를 가든 이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사촌도 이기고 싶은 경쟁 유전자 때문이다.


한국인의 경쟁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의 이력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했다. 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요소였다. 특히 한반도는 70%가 산악지형으로 경작지가 부족해 식량확보가 늘 문제였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출간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보면 조선전기(14~15세기) 550~650만 명이었던 인구는 조선후기(18~19세기) 1650~1750만 명으로 대략 1천만 명이 넘게 급격하게 늘었다. 경작지는 한정적이었고 생산량은 지금의 반도 안되었을 터이니 늘어난 인구수를 감당하지 못해 식량부족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조선중기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전란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나락으로 빠뜨렸다. 이런 피폐한 삶은 조선후기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더욱 극심해졌다. 선정을 펼쳤어도 늘어난 인구수를 감당하기 벅찼을 텐데 중앙관료 사회의 부정부패와 지방 탐관오리들의 수탈은 왕조 몰락의 서막을 알렸다. 백골징포, 황구 등 삼정문란으로 국가기강이 무너지고 농촌사회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팔도에서 생존을 위해 빈번하게 민란이 일어났고 수많은 유랑민이 발생하였다. 국가의 보호에서 배제된 백성들은 극도의 혼란 속에 생존의 갈림길에서 각자도생 해야 했다. 각자도생의 삶이란 주변 경쟁자를 물리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조상들의 유전자 속에 ‘경쟁=생존’이라는 등식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어진 일제강점기 시절은 말해 무엇하랴. 내 나라 말과 정신마저 빼앗긴 시대를 버텨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해방을 맞았으나 이어 찾아온 한국전쟁은 그나마 지탱해 오던 척박한 삶마저 송두리째 박살 냈다. 전쟁에 겨우 살아남은 자들도 폐허가 된 이 땅에서의 생존은 아득하기만 했다.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은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경쟁은 곧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로 단단히 뿌리 박혔다. 너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경쟁에서 도태되니 생존을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했다. 이러한 궁핍, 결핍 속 생존투쟁으로 다져진 경쟁유전자는 자연스럽게 한국인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하였다. 이는 결핍이 주는 위대함이다. 


이러한 생존투쟁의 역사 속에 장착된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경쟁유전자는 국가주의와 결합하며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죽어도 지기 싫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한국인을 한 덩어리로 묶어 결국 세계 최고 경제 대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이런 면으로 보면 전쟁 폐허국에서 단기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성과에는 일본의 역할도 있었으니 이를 고마워해야 하나 하는 쓸모없는 생각도 해본다.


경쟁은 당사자들의 피를 말리지만 실력을 늘리고 성과를 창출한다. K팝이 지금 이 자리에 올라선 것도 치열한 경쟁이 밑바탕이 되었다. 아이돌 지망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현재의 실력 있는 K팝 아티스트들을 만들었으며, 데뷔 후에도 경쟁자들로부터 정상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들어 현재의 K팝 인기를 이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2천여 개(2018년 기준)가 넘는 크고 작은 기획사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실력 있는 가수를 키워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었다. 지금 세계적 아티스트로 대접받고 있는 BTS가 그 결과물이다. 소속사 하이브는 아주 작은 기획사에서 시작했고 거대 기획사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피, 땀, 눈물을 흘리며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이 좋든 싫든 노력을 불러와 열매를 가져온 것이다. 


이와 같이 경쟁이 K팝 분야에서 가수들의 실력향상에 작동하거나 동종업체 간 경쟁이 성과촉진제로 작용하는 것처럼 승리의 방정식으로 작용한 것은 경쟁의 긍정성이다. 반면 경쟁이 한국인의 오로지 ‘지기 싫어서’ 기질로만 작동하면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이 돼 버린다. 문화심리학자 한민박사는 한국인은 유독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경쟁에서 지기 싫으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깊다. 그러다 보니 끝까지 우긴다. 가족이나 친구 간에 정치와 종교 얘기는 금기사항이 된 지 오래다. 논리나 사실보다 너를 이겨야 하니 무조건 ‘내 말이 맞다’는 전제를 던져 놓고 하는 토론은 의미 없다. 혹시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논리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저 ‘니 똥 굵다’로 끝내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이런 경쟁유전자의 부정적인 작용 때문에 몇 년 전 떠들썩했던 '인국공 사태'라 부르던 2020년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취준생들의 분노표출과 같이 공정을 부르짖으며 ‘내가 안되면 너도 안 돼’와 같은 공멸의 사회문제를 낳기도 한다. 계속 강조하지만 뭐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 만고의 진리다. 한국인의 경쟁 유전자가 실력을 늘리고 성과촉진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너 죽고 나 죽자식의 공멸을 불러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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