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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4. 2023

등골로 만든 유별난 K교육열

K바람의 든든한 밑거름 교육열

“배고프지?”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꽃무늬 양은 오봉에 닭 한 마리가 실려 나왔다. 아무리 내가 닭을 좋아한다지만 불과 두서너 시간 전에 먹은 반계탕이 여전히 뱃속에 꼬꼬댁거리며 들어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왔다. 

“아이 안 먹어! 아직 배 안 고파”

“그래도 한 번 먹어봐”

엄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닭다리 한 개를 집어 내밀었다.

“근데 참! 이 닭 누가 잡았어?” 

불현듯 닭의 정체가 궁금했다. 닭이 상에 올라왔다는 건 기르던 닭을 누군가 잡았다는 얘기다. 

“누가 잡긴 누가 잡어. 내가 잡았지. 그거 잡느라... 말도 말어. 그러니 어여 먹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니는 평생 한 번도 닭을 잡아본 경험이 없다. 그 두려운 일을 오로지 아들을 위해 두 눈 질끈 감고 닭 모가지를 비틀었던 것이다. 


닭은 여전히 우리 집 식재료에선 자주 보는 항목이다. 닭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붙어 있는 부모님의 등골도 함께 본다.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8남매를 키워낸 것도 벅찼을 텐데 없는 살림에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오로지 두 눈 질끈 감고 닭 모가지를 비틀었던 부모님의 등골로 만든 열매였다. 이는 비단 나의 부모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 땅 모든 부모들의 등골로 쌓은 탑이다. 


‘못 배운 놈’ ‘못 배운 년’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자존심을 짓밟는 데 이만한 욕은 없다. 아마 한국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욕 중에 하나일 게다. 일단 이 욕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눈이 돌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전투력이 상승한다. 이처럼 한국인은 배움에 진심이고 민감하다. 

한국인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왕조시대부터 유별났다. 특히 유교가 근본 사상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촌구석까지 서당이 있을 정도로 배움(學)에 진심이었다. 이런 조상들의 높은 교육열은 일제 강점기와 전후 가난했던 시절을 겪어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자원이 부족한 척박한 환경에서 민초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대대로 배움, 교육에 진지했으니 그 유전자가 어디 가겠는가? 


한국은 대학진학률이 전 세계에서 1위다. 또한 한국은 세계적인 명문대 진학 유학생비율이 최상위권인 나라다. 학업성적도 우수하다. 등골 마음을 등에 진 자녀들이 죽기 살기로 공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 사회에서 한국인의 죽기 살기 독한 공부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인의 이러한 높은 교육열은 그동안의 경제성장과 지금의 K-바람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경제는 같은 자본이라도 투입되는 노동력의 질과 양에 따라 그 성과에 큰 차이를 보인다. 유별난 교육열로 길러낸 우수한 노동력이 넘치는 나라에서 고속 성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물이다. 세계적 석학 피터드러커도 그의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에서 한국의 초고속 성장 비결을 높은 교육열로 만들어진 인재풀을 꼽았고,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도 한국의 성장 비결로 교육을 들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한국의 성공 이유를 ‘브레인’과 ‘에너지’로 보았다. 머리 좋고 열정적이라는 말인데 교육열 하면 최고인 것과 근면과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의 K-문화 유전자를 들여다본 것이다. 이런 교육열 덕분에 한국인들은 지금도 세계 어디를 가나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실제로 한국인의 평균 IQ는 세계 1,2위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교육열에는 항상 ‘과한’ ‘지나친’이 붙는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이 세상사다. 지금 한국사회는 헌신적인 교육열의 순기능도 많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어찌할 것인가? 미래세대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사회는 내일이 없는 사회다. 지금 당장 교육의 목적,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시 자녀에게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에 입사원서 낼 기회가 생긴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교육회사 재직시절 학부모 대상 강연에서 종종 했던 질문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OK에 손을 든다. 세계적인 기업인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당연히 대기업 입사를 위해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런 기업을 만들 사람보다 안정적인 입사자 만들기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미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100대 자수성가 부자들의 학력 조사결과 25%가 고등학교나 대학 중퇴자들이라고 한다.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도 고등학교 중퇴자이며,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이들 모두 중퇴자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것이 현실임에도 한국인의 교육열 방향은 오로지 학력 늘리기에만 향해 있다. 자신보다 학력이 적은 중퇴자들이 세운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학력을 늘리고 있는 아이러니에 빠져 있는 것이다. 교육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자는 말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교육 때문에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면 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시 돌려 뽑아 쓸 수 없는 것이 시간이고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좋은 직장을 위해 명문대 합격에만 올인하는 지나친 입시위주 교육은 빨리 바뀌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근 20여 년 동안, 사교육 현장에서 충분히 경험했고 피부로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인식 전환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제보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나아진 세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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