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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26. 2024

아시아의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킨 주범은?

클린스만 감독님 제발

리더의 자리는 늘 고독하고 위태롭다. 리더는 늘 욕먹는 자리다. 그것이 리더의 숙명이다. 3차전 경기는 처참했다. 2차전 요르단전을 보며 눌러 놓았던 고구마, 감자까지 한꺼번에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이번 경기는 편안하게 볼 수 있겠 거니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그래도 국대 감독인데 뭔가 맞춤 전략이 있겠지’ 

선발 명단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경기에 집중했다. 그 바람은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졌다.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내가 바보였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선발은 2차전과 3명만(정우영, 김영권, 김태환) 변화를 줬다.

(먼저 결코 감독이나 코치진의 인신공격을 위한 글이 아님을 밝힌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경기가 진행될수록 화면에 클린스만 감독이 비칠 때마다 감독이 미워졌다.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나가서 소리라도 지르지 벤치에 앉아 웃는 것인지 원래 그런 표정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화면에 스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덩달아 멍한 표정의 차코치도 얄미워졌다. 경기 후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곳저곳 두리번거려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어제 축구경기를 본 팬이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그저 평범한 사기업 리더가 아니라 한 국가의 대표팀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점이다. 한 개인의 야망이나 꿈을 펼치는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의 하고 싶은 축구 철학과 색깔이 있어도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한판한판 치러지는 모든 경기의 과정과 결과도 책임지는 자리다. 

‘나를 믿고 기다려 달라’ ‘우리는 우승한다’ ‘우리는 결과를 반드시 만들어 낼 거다. 믿고 기다려 달라’

클린스만 감독도 그만의 전술과 철학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제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그 경기에 무슨 전술이 숨어 있었고, 무슨 철학이 숨어 있었나? 또 감독의 리더십은 어디에 있었나? 묻고 싶다.

리더 한 명이 조직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나는 한때 기업에서 조직관리전문가로서 조직을 운영하며 이런 사례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나 스스로도 직접 그런 경험을 했다. 다 죽어가서 폐쇄 직전의 조직을 살려 3개월 만에 전국 1등 조직으로 만든 경험도 있었다. (뭐 안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패스) 리더는 그런 자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야박하고 잔인한 평가일지 모르나 현 국가대표팀에는 리더는 없다. 리더라기보다 그저 과거 축구 잘하던 후배들의 든든한 응원자 한 명쯤으로 보인다. 비웃고 조림 돌림하자고 이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리더는 그만큼 성과는 물론 존재감을 안과 밖으로 보여줘야 하는 자리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언론플레이를 해서라도 과정도 인정받아야 하는 자리가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일반 기업에서는 기간을 정해두고 성과만 내면 될지도 모르지만(사실 기업에서도 그렇지 않다) 축구나 기타 스포츠의 감독은 다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과정을 방송이나 뉴스, 인터넷을 통해 국민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결과만 중요한 자리라면 전파 낭비하며 과정 중계는 뭣 하려 하겠나? 이번 아시안컵 대회도 마찬가지다. 

설령 우리 선수들의 노력으로 우승한다고 쳐도 이번 조별리그 과정에서 보여준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 먼저 글에서도 말했지만 그 책임은 이런 축구철학, 이런 축구 스타일의 감독이 현 국가대표 축구팀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축협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져야 할 윗선은 쏙 빠지고 꼬리 자르기로 끝내려는 관행이 생겼다. 이태원 참사, 청주 궁평 지하차도 침수 사고, 해병대 등 여전히 책임지는 자가 없다. 이번 아시안컵 조별리그 대참사는 달라야 한다. 축협은 어떤 방식으로 무조건 책임져라. 그냥 아무 일 없듯이 스리슬쩍 넘어갈 생각은 말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꼭 우승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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