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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27. 2024

60년대 코첼라 무대라면 헤드라이너는 당연히 그녀들

K팝 한류스타의 조상 김시스터즈를 아는가?

2023년 북미 최대의 음악 축제 코첼라 헤드라이너는 블랙핑크(BLACKPINK)였다. 미국의 포브스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으로 격찬했다.

‘예전에는 세계 최대의 걸그룹이란 타이틀이 슈프림스, 대스티니스 차일드, 푸시캣 돌스의 것이었고 최근까지는 피프스 하모니에게 있었다. 현재 그 타이틀은 오직 블랙핑크에 해당된다.’

또한 블랙핑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하는 ‘올해의 엔터테이너’에 이름을 올리며 ‘블랙핑크는 세계적 트렌드를 이끄는 현시대의 아이콘이자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 밴드가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만일 60여 년 전에도 코첼라 무대가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그 무대 헤드라이너도 K걸그룹이 올랐을 것이다. 바로 BTS, 블랙핑크보다 훨씬 먼저 팝의 본고장 미국을 흔든 원조 K-팝 스타가 김시스터즈다. 60여 년 전 있었던 일이니 요즘 사람들에겐 이름도 생소하고 믿기지도 않을 일이다. 하지만 엄연히 실존했던 인물들이고 모두 사실이다. 

김시스터즈(숙자, 애자, 민자)는 미군부대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59년 미국에 진출하였고, 1960년대 ‘동양에서 온 마녀들’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들은 당시 미국 CBS 인기 TV쇼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에 무려 22번이나 출연했을 만큼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는 그 시절 최고 스타 루이 암스트롱이나 패티 페이지보다 더 자주 출연한 횟수다. 

이난영과 김시스터즈

이들을 최고의 스타로 키운 이가 바로 그 유명한 ‘목포의 눈물’ 이난영이었다. 김시스터즈는 바로 이난영의 딸들로(민자는 입양한 조카)로 구성한 걸그룹이었다. 그녀는 작곡가, 매니저, 마케팅까지 모두 담당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엔터테인먼트 대표 역할을 하며 그녀들을 미국시장에 진출시켰다. 그러니까 지금 최고의 엔터테이너 그룹을 이룬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 방시혁 보다 훨씬 앞선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했던 이가 바로 이난영이었다. 


지금보다 수십, 수백 배 열악했던 시절 그들의 미국진출은 험난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난영은 그 악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그녀들을 미국시장에 진출시켰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들이 미국시장 진출할 수 있었던 힘은 딱 하나 절실함과 피나는 노력뿐이었다. 특히 이난영은 당시 남편이 납북되는 바람에 홀로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야 했다. 이난영은 오로지 자녀들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연습은 무조건 하루 8시간 이상시켰으며, 영어에 서투르니 영어가사는 무조건 외우게 했고, 모두에게 10개 이상의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녀들의 인기가 올랐을 때 당시 최고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이트도 거절했을 만큼 그녀들은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요즘 K-팝 아이들 성공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이난영과 그녀의 딸들 김시스터즈가 현재 K팝 한류의 조상들인 셈이다. 시대를 달리하여 김시스터즈와 지금의 K팝 한류스타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뿐이다.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과 은근과 끈기의 정신이다. K-문화 유전자 힘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BTS 멤버들의 군입대로 잠시 조용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영향력은 아미를 중심으로 견고하다. 재계약한 블랙핑크는 자타공인 현존하는 최고의 K팝 걸그룹이다. 이뿐인가. 뉴진스, 트와이스,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등등 수많은 K팝 가수들은 여전히 지구촌 곳곳을 흔들고 잇다. 모두 자랑스러운 이난영과 김시스터즈의 후예들이다. 


길게 말할 것 없다. K팝은 어느 날 번쩍 나타난 유행이 아니라는 말이고, K팝은 금방 사라질 문화가 아니라 한국인이 만든 하나의 문화 장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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