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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29. 2024

뭉치면 산다.

한국인의 생존 유전자 공동체 의식

‘조선인들은 모래와 같아서’,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서’ 이 따위 말들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직도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여전히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보 멍청이 거나 친미사대주의자일뿐이다. 식민지 시절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퍼뜨린 식민사관의 부스러기, 군부독재 시절 어느 개념 없는 주한 미국대사가 던진 쓰레기 같은 말에 여전히 의미를 부여하는 바보 같은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그저 힘없던 시절 한국인들이 당했던 수모일 뿐이라고 생각하자.


코로나 팬데믹 시절,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정부의 지침에 잘 따른 나라다. 국민들은 불만이 있어도 큰 소요 없이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와 영업제한 시간을 지켰다. 당시 선진국이라 불리던 많은 서구권 국가들은 어땠나? 대형마트 생필품 코너가 싹쓸이되고, 물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화면에 가득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자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방역지침을 못 믿겠다며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총기사건까지 발생했다. 최고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차분하고 질서 정연하게 정부 지침에 따르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해외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세계의 언론들은 여러 분석기사가 쏟아냈다. 일부는 ‘식민지의 경험이 아직도 남아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라는 분석부터 ‘군부독재 시기를 거치며 복종에 길들여진 탓’이라는 이유 등 그들 만의 분석이 난무했다. 변방 작은 나라의 신기한 현상에 대한 약간은 시기 질투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한 설문기관의 조사 발표는 이런 분석에 대한 한국인의 실제 생각을 잘 보여주었다. 조사결과 설문에 응한 60% 이상이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한다. 바로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이 발로였던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외세의 침략 전쟁이 잦고, 경작환경이 척박한 땅에 살아온 한국인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뭉쳐야 산다’라는 공동체 의식이다. 나와 가족들을 지키려면 우선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마을 두레공동체를 만들어 규율을 잡고, 공동노동을 통해 생산에 기여하고, 화재나 가뭄 홍수 등 위기에 함께 대처하며 함께 살아왔다. 마을 두레공동체는 한국인의 집단주의 공동체 의식의 뿌리였던 것이다. 


이런 공동체 의식은 한국인의 습관이나 행동 곳곳에 묻어 있다. ‘넘(남) 부끄럽다.’ 공동체 안의 넘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한국인이 눈뜨면 입에서 나오는 ‘우리’라는 말속에도 깊이 박혀 있다. 우리가 아니면 남이고 남에게 우리 치부를 보이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또한 마을공동체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어 나만 빠지기를 싫어한다. 그러니 공동체(대중)가 움직이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가진 한국인이 위기에 잘 뭉치는 건 당연하다. 멀리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이 그렇고, IMF 금 모으기 운동과 서해안 유조선 침몰 사고 자원봉사 행렬이 그렇다. 몇 해 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워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 낸 촛불항쟁이 그렇다.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은 대동(大同)이라는 말과 괘를 같이 한다. 한국인들이 꿈꿨던 이상사회가 바로 공동체가 함께 잘 사는 대동사회다. 지금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마을 공동체 붕괴로 많이 없어졌지만 마을마다 대동계가 있었다. 우리 고향 마을에도  대동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 말 즈음, 대학 축제도 대동제(大同)라 불렀다. 사실 이 대동(大同)이라는 말은 흘러간 말처럼 보이지만 그 깊은 뜻을 알면 결코 고리타분한 단어가 아니다. 


대동이라는 말은 중국 전국시대부터 있었던 말로 ‘예기(禮記)’의 예운 편(禮運篇)에 나온다. 이 대동사상에 대한 공자의 해석이 놀랍다.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다.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이 국가를 다스리되 왕위는 세습되지 않고, 도덕적 수양의 과정을 거친 지혜로운 성인이 왕위를 물려받아 국가를 통치하여야 한다’ 

공자는 불균형 적인 분배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사회적 차별을 없앰으로써 하나로 어우러지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 즉 대동사회라 생각했다. 2천 년 전, 공자의 혜안이 존경스럽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오르고 K콘텐츠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K의 성공 신화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며 인정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잘 모르니 자긍심과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이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먼저 우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내재된 힘을 알지 못하니 청년들에게 이 나라는 헬조선, 지옥불반도 일뿐이고 미래를 열어갈 아이를 낳지 않는다. 급기야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는 세계 최저 출산율의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K-문화 유전자의 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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