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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19. 2024

지극 정성이면 감천한다.

정화수 100일 글짓기를 시작하며

‘정화수(井華水): 명사,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 조왕에게 가족들의 평안을 빌면서 정성을 들이거나 약을 달이는 데 쓴다. 정안수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정화수에 대한 설명이다. 

정회수(정안수)는 한국인의 마음이다(사진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어릴 적, 우리 엄니는 정월대보름날 또는 집안이 우환이 있거나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랄 때 뒤꼍 장독대에 정화수 한 사발을 떠 놓고 지극정성을 올렸다. 마냥 까불대다 가도 얼마나 경건하고 조심스러웠는지 그 시간만큼은 엄니 치마폭에 숨어 조용히 지켜봤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마음에도 무엇인가 경건하고 강력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 한 사발에 허리를 숙이며 비는 행위가 서구인들 눈으로는 그저 미신 행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화수 속에는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삶이 들어 있고,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정화수(정안수)는 힘없는 백성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절대자이자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동무였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정진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잡사에 때 묻지 않은 새벽녘 맑은 물 한 사발에는 복잡하지 않은 딱 하나의 마음이 들어 있다. 바로 지극정성의 마음이다. 지극 정성이면 감천한다는 그 마음 하나로 신령(하늘)님께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맑은 물 한 사발을 올려놓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대상을 향해 치성을 올리는 지극정성의 그 마음이 바로 정화수의 힘이다. 전장에 나간 아들이 꼭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밤새 비는 마음, 돌림병에 걸려 할딱이는 막내딸을 위해 손이 닿도록 허리를 숙이며 빌던 에미의 그 마음을 무슨 수로 헤아릴까? 그저 미신에 불과한 행위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마음이 너무 넓고 깊다. 


청룡의 해가 밝은 지 벌써 스무날이다. 순창의 내 춤 동무는 1월 1일부터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정화수 의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마음 한구석쯤 나를 위한 기도도 들어 있었다 하니 그저 감사하고 황송할 따름이다. 그 말을 들은 후 며칠째 정화수 마음이 계속 맴돌았다. 탱탱한 오줌보가 잠을 깨운 새벽녘, 수많은 잡념들 사이로 정화수가 번득 떠올랐다.

‘아 나도 정화수를 떠야겠다’

그런데 무슨 수로 정화수를 올리지? 삭막한 이 도시에서 정화수 뜰 우물은 찾을 수 없고, 그렇다고 수돗물을 올리기에는 내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번득 ‘아 100일 정화수 글 짓기를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무언가를 짓는 다는 것은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짓는 것처럼 그 결과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일이니 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이미 나는 두 번의 100일 글짓기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10 수년 전 글쓰기 연구원 문우들과 진행한 100일 글짓기 때였고, 두 번째는 전주에서 국수장사 할 때였다. 이제 세 번째 100일 글짓기를 아무 준비 없이 그저 정화수 마음만으로 시작한다. 주제도 정하지 않았고,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정화수 마음으로 글 짓는 마음만 올리기로 하였다. 


100일, 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곰할머니는 마늘과 쑥만 먹고도 참아냈는데 곰할머니 후손인 체면에 중도 포기란 없어야 한다.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다.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함께 하실 분( 뭐 같은 날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요) 100일 정화수 글짓기에 도전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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