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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30. 2024

죽다 살았네.

좋은 일이 생길랑가?

정말 죽다 살았다.

죽다 살아난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 것 같은 이틀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렸을 적 홍역으로 죽을 뻔했다는데 아마도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다. 내막은 이렇다.


지난주 동네 동무의 달콤한 유혹으로 오랜만에  구경을 다녀왔다. 그것도 제일 추운 날, 일기예보로는 그날  영하 14도라 하였고, 내 몸의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가 훨씬 넘었을 날씨였다. 화천 백암산  영하 28도까지 체험해 봐서 그 온도는 대충 짐작으로 안다. 영하 20도가 넘으면 겨울바람과 추위가 노출된 모든 살갗에 날카롭게 박힌다. 그날 월미도 바닷바람이 그랬다. 그 추운 날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바닷갬성에 젖어 두어 시간을 헤매고 돌아오니 저녁부터 목이 칼칼하니 감기란 놈 징조가 스멀거렸다. 내 몸뚱이니 대충 감기 오는 징조는 잘 안다. 어려서 홍역의 후유증으로 난 기관지가 약하다. 그런 이유로 감기는 항상 목을 통해 들어온다. 집에 있는 종합감기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여지없이 코가 꽉 막히고 목이 따끔거렸다. 초기 잡자는 생각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감기는 바닷갬성과 바꾼 거라 생각하고 지어 준 3일 치 약을 먹으면 나으려니 했다.


그런데 낫는 듯하더니 3일 차 아침에 딱 목이 아프고 가래가 올라왔다. 또 병원에 가야 하니 약간 짜증이 났다. 한 일주일 치 지어주지. 이 말을 병원에 가서 하려다 말았다. 의사 선생도 다 생각이 있을 거로 생각하고 맘을 눌렀다. 그렇게 다시 지은 3일 치 약이 어제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어제 아침부터 또 몸이 안 좋았다. 병원에 갈지 잠시 고민했다. 남은 약 3 봉지가 왠지 든든해 보였다. ‘나에게는 아직 약 3 봉지가 남았…’ 이순신 장군의 마음으로 버티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리될 줄은, 내가 이순신 장군도 아니면서 부린 객기의 대가가 이리 클 줄은.


오후가 되자 몸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병원에 갈 생각도 못 하고 집에 들어와 마지막 약을 먹고 초저녁부터 이불속에 들었다. 몸이 몹시 예민해져서 옷을 입었는데도 이불밖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그 부분이 으스스 떨려왔다. 주기적으로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하고, 뼈 마디마디 사이가 욱신욱신 아파지며 몸이 녹아내렸다. 감기 하나로 웬 엄살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아픔은 어차피 기준이 없으니 넘어가자. 오한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니 식은땀으로 옷이 젖어 깨었다. 밤새 3번을 갈아입었다. 비몽사몽 잠을 잔 건지 어떤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몽롱했다.


아픈 몸을 지고 90 노인 걸음으로 병원에 갔다. 의사가 또 왔냐는 눈빛이다. “증세는 어때요?”

직업인의 멘트는 역시 감흥은 없다. 의사는 의례 입을 벌리라고 하더니 목구멍을 들여다보고, 콧구멍에 작은 쇠뭉치를 넣고 콧물을 빨아들였다. 이런 거 안 하는 병원도 많은데 별거 아닌 이런 진료행위가 왠지 치료받는 기분이 들긴 한다. 나만 그런가?

“이상하네. 많이 아프신 거 같은데… 독감인가? 검사해 보실래요?

“아이고 몸이 너무 아파요. 검사를 하든 뭐를 하든 어떻게 든 해주세요”


다행인지 검사 결과 독감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몸이 많이 안 좋으니, 수액을 맞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한다. 링거를 꽂고 병상에 누워 잠시 병원놀이 하고 왔다. 돌아와 다시 약을 먹고 어제보다는 좀 나아진 상태로 하루 종일 기절해 있었다. 만 24시간이 한참 지난 이제 겨우 깨어났다. 깨어나니 지나간 이틀이 꿈같기도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멍한 기분이다. 재작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처음 방문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여 밤새 앓았는데 증세가 그때와 비슷했다.

(궁금하면 요기 https://blog.naver.com/junbh1/222841279232 )

키르키스스탄 이식쿨 호수: 호수 정령들에게 신고식을 치러야 했었다.2022.7월

이번 이틀 동안 앓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아픔이다. 물론 감기라고는 했지만, 의사 선생도 머리를 조아리며 이상하다고 했으니 알 수 없는 아픔이라 할 밖에. 독감도 아니라고 하니 그냥 이유 없는 아픔이다. 지난 여행 때는 이식쿨 호수 정령들에게 신고식 하느라 그랬다면, 이번 아픔의 이유는 무엇인가? 뭔가 앞으로 새로운 일이 생길랑가 보다. 과학적으로 따지지는 말자. 아픔 뒤에는 뭐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냥 믿어보는 거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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