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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Feb 11. 2024

어쩌다 어른으로 설 쇠기

설날 소회

도시의 명절은 바쁘다. 다들 시댁으로, 처가로, 선산으로 명절 루틴에 따라 돌고 돌아야 한다. 우리 집 루틴은 해마다 마지막 종착지가 처가다. 올해도 명절 저녁에 모이기로 하였기에 늦은 오후 출발하였다. 명절값 하느라 그러는지 평소 안 막히던 길이 막혔다. 막히지 명절 같았다. 나는 명절날 차가 하나도 안 막히면 조금 섭섭하다. 변태인가 멍가 모르겠다. 


6시경 처가 근처에 도착했으나, 오랜만에 모인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사가기로 하고 재래시장에 들렀다. 뭐 특별한 것 없을까 하다가 회를 떠가기로 했다. 한 모 씨가 말했듯이 회라는 것도 서민들이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니 이런 명절날 한번 맛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그리 많을 줄 몰랐다. 아직은 추운 날씨인데 횟집 앞에서 5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중도포기의 유혹을 견뎌내고 횟집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해 준 광, 우, 방 회를 떠가지고 처가에 도착한 시간은 근 7시가 다 되어서였다. 도착하니 우리가 가장 늦었다. 양손에 광. 우. 방 회와 미리 사두었던 소고기, 과일 등으로 스리슬쩍 지각 잔소리를 넘겼다. 역시 웰컴투 동막골 촌장 할아버지의 사람마음 잡는 비법은 잘 통했다.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뭐’ 


오랜만에 가족들 모여 북적이니 집안에 온기가 돌았다. 간단하게 세배를 드리고 본격 먹자판을 폈다. 상을 펴고 식사 준비가 거의 다 되었을 무렵 조카들이 각자 짝을 데리고 나타났다. 작년 가을에 시집간 조카는 진주 시댁에서 함께 올라온 것이고, 올 6월에 장가갈 조카는 색시 첫 인사 겸 함께 온 것이었다. 조카들까지 다 오니 집이 꽉 찼다. 미리 와 있던 큰 조카는 애기가 벌써 4살이다. 집안에 어린아이 웃음까지 합쳐지니 장모님 홀로 지켜온 집이 꽉 차는 것 같아 좋았다.


손위 동서가 술을 안 마시는 관계로 나는 어른 대표로 주권을 잡게 되었다. 술돼지에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새 조카사위 술 한 잔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지며 마음이 넉넉해졌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하 호호 즐기는 중에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나와 어린 조카들이 웃고 있었다. 사진 속 꼬맹이들이 어느새 커서 자기 짝을 데리고 온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잔 마셔서 그랬는지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이 눈앞에 펼쳐지며 꼬맹이 조카들과의 추억과 젊은 내가 겹쳐지며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명절에는 고향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명절은 세대와 세대가 만나 다음 세대를 확인하는 자리였구나. 명절이나 되어야 잠깐 봤던 조카들이 훌쩍 커 어른이 되고, 또 새로운 가정을 꾸려 다음 세대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명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명절은 고향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한 세대가 또 다른 세대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걸 깨닫는다.


아마도 저 4살짜리 조카 손주도 금세 커 어느 명절에 또 자기 짝을 데리고 오고, 자기 가정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그것이 한 인생이니 명절은 모두 모여 각자의 한 생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드라이한 해석을 해본다. 해마다 명절이면 술돼지인 나는 그저 술 많이 먹을 생각만 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이제 다음 명절부터는 어쩔 수 없이 어른 흉내라도 내야 할 것 같다. 조카들이나 손주 세대에게 잘 익은 어른으로 비쳐야 할 텐데 철없는 으른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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