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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Feb 10. 2024

까치 까치 설날은

설날 아침에

명절이 점점 무뎌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삶이 점점 퍽퍽해져 그런 걸까?

한동안 나이 듦을 핑계 삼았으나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까지도 우리 가족 명절은 여느 집처럼 고향 집이 북적북적 시끌시끌했었다. 그때는 좋건 싫건 명절이면 고향 집에 모여  시끌벅적하다 다시 일상에 돌아오는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그랬던 우리 집 명절은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다른 집들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참 동안 홀로 고향 집을 지켰었다.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시고도 명절은 큰 변화 없이 고향 집에 모여 지냈는데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우리 집 명절도 변화가 생겼다. 명절보다는 어머니 병환이 더 무게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초창기에는 형제들끼리 고향 집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해 차례를 지냈으나, 요양병원 생활이 5년을 넘어가자 점점 변화가 생겼다. 명절도 병원 계신 어머니 중심으로  중요 행사가 되었다. 그러니 시골집 차례는 명절 전 간단하게 술 한잔 올리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추석 때에는 벌초하러 내려가 차례를 지냈고, 설날에는 미리 갔다 오거나 명절 후 다녀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에게 명절이라는 의미는 점점 퇴색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10년 넘게 죽음과 싸우며 요양병원 생활을 하였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갈 무렵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10여 년 동안 옆에서 어머니 고통을 지켜본 나는 장례 동안 큰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긴 고생 끝에 이제 편안히 쉬시는 것이기에 담담하게 보내 드렸다. 사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슬픔이 깊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다. 큰 슬픔이 꼭 한 번씩은 온다는 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 죽음을 온전하게 잘 받아들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나는 어머니를 온전히 보내 드리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후자에 속한 것 같기도 한데  오겠지 하며 지내고 있다.

 

이번 명절도 지난주 미리 시골집에 다녀오는 것으로 퉁 쳤다. 평소 친분 있는 후배들과 모임을 핑계 삼아 미리 성묘 겸 다녀온 것이다. 하룻밤 술 마시며 푸지게 놀고 올라오면서 삐쭉 산소 올라가 절 한번 올린 것으로 명절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올해 나의 설은 미리 지났었다.


고향 어머니, 아버지(합장) 산소: 올해 미리 성묘 드렸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오늘은 진짜 설날이다. 어릴 적 설날 아침이면 의례 TV에서 나오던 동요다. 저 노래 들은 지도 꽤 되었다. 설날 아침 TV 볼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요즘은 방송에서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휴일쯤으로 여겨   일어난 설날 아침 ‘까치 까치 설날은’ 동요가 생각나는 것은…


올해는 괜히 어머니, 아버지만 보고 싶다.

우리집식 차례, 제사상:명색 종갓집이지만 우리식으로 차려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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