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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Feb 12. 2024

커피 카피

벗이 된 커피나무

나는 커피를 잘 모른다.

하지만 커피나무와는 함께 산다. 벌써 10년도 넘었다. 어느 해 봄인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양재동 꽃시장을 들렀었다. 화분 두어 개를 사고 시장을 나오는데 주차장 근처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작은 화분이 눈에 띄었다. 시장에서 흔히 파는 손바닥 만한 자주색 화분에 잎이 서너 장 붙어 있는 작은 식물이었다. 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큰 화분 파느라 정신없는 아저씨는 귀찮다는 듯 '커피나무'라고 외쳤다. 커피나무를 우리나라에서도 파는 줄 처음 알았다. 마셔는 보았지만 커피나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집에 가져와도 살아날까 싶었지만 일단 신기하니 집어 들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올 줄은 몰랐다. 


입양 후 처음 몇 년은 잘 자라지 않았다. 당시는 지방 근무 시절이라 애정을 주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화분으로 키우는 방법을 몰랐다.  어느 날 동네 카페에 커피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을 보고 물어봤더니 분갈이를 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커피나무 사온 지 3~4년 후에 처음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빌빌거리던 녀석은 제법 나무 태가 나기 시작했다. 한번 자리를 잡더니 녀석은 해마다 쑥쑥 자랐다. 어느 정도 자라 다시 분갈이를 해주었더니 키가 1미터를 넘었고 누가 봐도 어엿한 나무 꼴을 갖추게 되었다. 

커피나무는 분갈이를 하면서 제법 나무 태를 내기 시작했다.

입양한 지 6~7년 정도 지나을 때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절에 가지 몇 개에 새싹 같은 것이 삐쭉삐쭉 내밀었다. 커피 꽃 봉오리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며칠 후 커피 꽃이 하얗게 피었다. 정말 신기했다. 꽃에 코를 대어보니 기분 좋은 꽃향기가 배어 나왔다. 그해 여름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더니 커피나무는 우리 집 천장을 닿을 만큼 자랐다. 커피 농장을 하는 지인이 맨 꼭대기 순을 잘라주라고 했지만 차마 자르지 못했다. 


커피 열매는 거의 1년 가까이 녹색 열매로 매달려 있다 약간 노래지며 붉은색으로 변한다. 첫 해 몇 알, 그리고 그다음 두어 해 수확한 커피가 밥그릇으로 한 그릇 정도 된다. 원래 원두를 수확해서 바로 볶아 커피를 내려 먹어야 하는데 우리 집 커피는 수확용이라기보다 관상용이고 반려나무에 가깝기 때문에 굳이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원두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밥공기 한 그릇만큼 되었다.

커피 꽃봉오리와 커피꽃, 그리고 커피 열매와 원두

명절이 끝나는 마지막 날, 할 일 없이 집안을 서성이다 커피나무에 눈이 갔다. 커피나무에는 작년 늦봄에 맺은 커피열매가 선홍 빛으로 탐스럽게 익어 있었다. 딸까 하다가 관상용으로 그냥 두기로 했다. 대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커피 열매를 맛보기로 했다.

‘더 두면 뭐 해 커피나 볶아 먹자.’ 

남은 명절 휴일 10여 년 함께한 커피나무의 추억을 마시기로 했다.

말했듯이 나는 커피를 잘 모른다. 누가 만들어 주면 마실 줄이나 알지 볶고 내리고 이런 것은 잘 모른다. 촌놈의 특징은 무대뽀 정신이다. 정글의 법칙 식으로 만들어 먹기로 했다. 프라이팬에 커피를 볶았다. 예능에서는 커피를 볶으며 커피 향이 장난 아니라고 호들갑을 떨던데 커피 향은커녕 그냥 탄내만 났다. ‘커피는 원래 쓴 것’이라 주문을 외며 거무스름해질 때까지 볶았다. 원두를 갈아 내려보니 커피 색깔은 그럴듯하다. 코를 들이밀고 킁킁대 보니 ‘음 커피 향과 약간 탄내가 올라온다’ 

커피 카피: 내가만든 커피, 맛은 말해 뭐 해

한 모금 홀짝 마셨다. 입안 가득 커피 향과 쌉쌀한 커피 맛이 감싼다. 

‘제법 괜찮다’ 

혼자 감탄하며 커피 맛에 빠져 들었다. 하긴 모든 음식의 맛은 감점, 느낌이 좌우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책방에 들어와 내린 커피를 마시며 커피나무에 대한 추억을 쓴다.

‘참 좋구나.’


그나저나 커피나무는 이제 늙어서 그런지 중간에 가지가 휑하고 꽃도 많이 피지 않는다. 작년에는 겨우 50여 알이 열렸는데 또 분갈이를 해줘야 하나? 아니면 새로 한 놈을 입양해야 하나? 별 중요하지도 않은 잡념으로 명절 연휴를 이렇게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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