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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Feb 14. 2024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 벗들 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 저자 안소영, 출판 보림


 1. 독서 소감

어려서부터 내 서재 하나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다행인지 10여 년 전 현재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그 꿈을 이루었다. 워낙 책 욕심쟁이인지라 꾸준하게 책을 모아 왔고, 요즘은 잘 사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꽤 많이 구입했다. 어느 날 책상에 쌓여 째려보는 책들의 기운에 눌려 그때부터는 잘 사지는 않게 되었다. 서재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책들이 있는 책방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나도 천상 서생 팔자다.


지금부터 250여 년 전, 온통 책 속에 묻혀 산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덕무다. 이 책은 1761년 당시 스물한 살 난 조선의 선비 이덕무가 쓴 간서치 전(看書痴傳: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이라는 짧은 자서전이다. 하루라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던 그는 늘 자신의 자그마한 방에서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누가 깨우쳐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읽었기에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러다 문득 뜻을 깨치게 되면 혼자 바보처럼 웃기도 하였다. 


한편으론 안쓰런 마음도 드는데 그는 왜 날마다 방에서 책만 보고 있었던 걸까? 이덕무는 이 책에 나오는 다섯 벗들과 마찬가지로 서자로 태어났다. 당시 시대에는 어디에도 낄 데가 없는 반쪽 양반 핏줄이었다. 이 책 속에는 이덕무와 그의 벗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다섯 벗들이 책으로 벗을 맺어 평생 교류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그의 스승 홍대용 선생과 박지원 선생 이야기도 들어 있다.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백성들의 퍽퍽한 삶을 함께 하며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 보았고, 날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왔기 때문에 당시 폐쇄적이고 불합리한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250여 년 전이었지만 청년 실학자들의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귓가에 들리는듯하다. ‘청년이 일어서야 나라가 산다.’ 요즘 청년들은 일어설 준비는 하고 있는 건 지. 뭐 이런저런 생각에 답답하다.


2. 가슴에 남는 문장들

p20 나는 책만 보는 바보

" 나는 온종일 그 방 안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모름지기 독서를 한다면 이 정도의 열정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창호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등불 삼아 책 읽는 선비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다.


p34 맹자에게 밥을 얻고 좌씨에게 술을 얻다

"유득공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선뜻 자신이 아끼는  책까지 팔아 나와 아픔을 같이하고, 또 나의 부끄러움을 덜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역시 무척이나 책을 아끼는 사람이었으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이덕무가 가족들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아끼던 맹자 한 질을 팔아 양식을 구하고 난 후 허전한 마음에 벗 유득공을 찾아가 한탄스럽게 얘기하자 벗 유득공이 벗의 부끄러움을 덮어주고 위로해 주려 자기도 그 자리에서 책을 팔아 술을 사줬다는 이 대목에서 벗 사귐의 예스러움이랄까, 멋이랄까, 가슴을 때리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과연 벗 사귐에  있어 이 분들의 반이라도 좇아갈 수 있는 걸까?


p48벗들이 지어준 나의 공부방

"보다 못한 벗들이 가진 것은 조금씩 내어 서재를 지어 주자는 의논을 한 듯싶다. 얼마 전, 백탑 아래 사는 또 다른 벗 서상수의 집에서 꽤 많은 책들이 서적상으로 실려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보니 그가 아끼던 책들이 마당에 부려 놓은 나무가 되어 내 집으로 찾아온 모양이다. 다른 벗들도 모두 넉넉한 형편이 아니니, 저 속에는 그들의 책도 제법 있을 것이다"

→이 책 중에 제일 가슴이 저리도록 감동적인 대목이 아니었나 한다. 다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 일 텐데 서재가 없어 어려워하는 벗을 위해 십시일반 추렴하여(자신의 아끼는 책들을 팔아 모아 만든) 벗에게 서재를 지어준다.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후배들에게 이 책 추천을 하면서 이 대목이 최고 감동이라고 추천사를 해주기도 했다.


p126 책을 만나러 온 어린 벗

"사실 이서구와 내가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장가든 지가 오래였고, 그는 이제 스물도 한참 안된 소년이었다. 나는 가난에 찌든 선비이고, 그는 부족함이 없는 명문가의 자제였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운명을 벗어날 길 없는 서자이고, 그는 임금과 성이 같은 종친의 당당한 적자였다. 그러나 내 책들을 바라보는 빛나는 눈길을 보며 나는 또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내게로 왔음을 느꼈다."

→벗이란 무엇인가? 경직된 유교적 가치관으로 인해 심하게 나이를 따지는 요즘세태에서 보면 정말 멋진 벗 사귐 아닌가? 서로 생각을 깊이 있게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을 나도 가지고 싶다. 아니다. 좋은 벗을 사귀고 싶거든 내가 먼저 좋은 벗이 되라는 말처럼 내가 먼저 좋은 벗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3. 읽고 난 뒤 추천은?

책을 덮으며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많은 벗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청춘의 방황기에 만나 삶을 논하고, 세상을 한탄하던 그리운 벗들은 다 어디 갔는가? 이번 주말에는 벗들과 전화라도 한 통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벗들이 그립다면 일독을 권한다. 사실 이 책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다. 이 책에 대한 감상문도 여러 번 썼다. 찾아보니 1년 전에도 다시 읽었었다. 이 책의 영향으로 갖게 된 나의 작은 꿈을 소개해 본다.


‘어려서부터 책은 좋아했습니다. 청년 시절 학과 공부는 땡땡이쳤어도 도서관은 늘 내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삶 속에도 직장생활 틈틈이 책을 읽었고 잘 쓰지는 못해도 늘 글을 쓰며 살아왔습니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한다지만 인생 후반부 책과 벗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또한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1년 전 이 책에 대한 감상문도 살펴보시길...

https://blog.naver.com/junbh1/22301646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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