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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Feb 20. 2024

이것도 K-매력, 짜장면 시키신 분~

24시간 배달이 가능한 나라,     배달의민족 K

‘짜장면 시키신 분~’

1990년대 후반 유행했던 이 광고 카피는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는 카피 중 하나다. 한 이동통신업체 광고로 기억하는데 기업 이미지와 배달이라는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진 광고였다. 이 광고 후 그 통신 업체 가입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라도는 자장면 집이 10집 넘게 늘었었다고 한다. 또한 엉뚱하게도 이후 우리나라 배달 주문이 엄청 늘어난 계기였다니 광고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사람들이 집이나 사무실에서나 시켜 먹던 배달음식을 한강공원 같은 야외에서도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광고의 힘인지 배달의민족 힘인지 신기한 현상이었음은 틀림없다.  

1990년대 한 이동통신 광고 장면: 짜장면 시키신 분~ 카피로 유명하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배달의민족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 사는 곳이면 대부분 배달이 가능하다. 조기축구 끝나면 학교 운동장에서도, 시장통 가판대에서도, 농촌에서 모내기를 하다가도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실제로 한강공원에는 배달음식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정말로 배달에 진심인 민족이다. 외국인들은 눈으로 보고도 잘 믿지 못하는 독특한 문화 중에 하나다. 여기에 저녁에 시키면 다음날 아침에 문 앞으로 배달되는 택배시스템을 알고 나면 ‘얘네 뭐야?’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한국의 배달문화를 알게 된 외국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연신 엄지 척을 날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한국 여행 가이드 책에는 한국 여행에서 꼭 체험해 봐야 할 목록으로 ‘한강공원에서 배달 음식 시켜 먹기’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속한 별것 아닌 일이지만 이 또한 우리가 가진 하나의 문화이고 K-매력이니 K-배달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배달의민족: 사람 사는 곳이며 어디든 배달이 가능한 신기한 나라

이러한 한국인의 배달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은 효종갱이라고 불렀던 해장국이었다. 효종갱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인 최영년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최초로 나온다. 효종갱(曉鐘羹)은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이다. 배추속, 콩나물, 쇠갈빗대, 해삼, 전복, 버섯 따위를 된장 푼 물에 종일 푹 고아 만든 해장국으로 당시 사대부들에게 인기 있는 배달 음식이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에서 항아리에 싸서 서울의 사대문 안의 대갓집으로 배달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 20km가 넘는 거리를 식지 않게 배달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현실성이 좀 떨어져 보이긴 한다. 아마도 사대부들이나 맛보는 귀한 음식이었으므로 신비감을 주기 위해 훗날 누군가 MSG를 가미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배달 문화가 시작된 것은 근대 이후 일명 철가방으로 부르는 중국 음식점이었다. 이러한 철가방 배달문화는 먹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필요성과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결합되어 더욱 확산되었다. 산업화 시기 점심 먹으러 나가는 시간도 아까워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일해야 했으니 배달문화가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로 직장이나 공사판 등 일터에서 시켜 먹기 시작했는데 점점 일반 가정에서도 시켜 먹기 시작하였다. 주말이나 소소한 집안 행사에 배달음식이 특별 음식으로 등장하였고, 특히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이삿날 짜장면’을 거의 국룰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더해 ‘짜장면을 시켜 먹어야 잘 살게 된다’는 근거 없는 속설까지 만들어 냈다. 


1980년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은 배달문화의 혁명을 가져왔다. 아파트 주변 음식점들은 입주민들 잡기 위해 입주 첫날부터 각종 판촉물과 스티커 등을 대량 살포하며 배달 고객을 잡기 위해 경쟁하였다. 배달은 중국음식점 외에도 치킨, 보쌈, 족발 등 포장이 가능한 음식으로 점점 더 늘어났다. 백화점 및 쇼핑센터 등 대형 유통 업체들도 배달 서비스 경쟁에 뛰어들며 배달문화는 ‘신속 정확’이라는 서비스 품질도 신경 쓰기 시작하였다. 이 ‘신속 정확’이 낳은 짜장면 배달, 철가방 스타가 한 명 있었다. 바로 1990년대 고려대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번개맨이다. 얼마나 빠른지 ‘전화기를 내려놓으니 짜장면이 오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고대생이 아니었던 나도 들어봤을 정도였다. 그는 그렇게 화제의 인물이 되어 TV에 출연하기도 했고, 신지식인에 뽑히기도 했으며, 여러 대 기업에 초청되어 인기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구설이 돌더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 번개맨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급 궁금해진다. 

중국집 철가방 배달문화

중국집 철가방으로 대변되던 배달문화는 1990년대 들어서며 급격한 변화를 맞기 시작한다. 소형 오토바이 보급이 늘자 음식 배달뿐 아니라 영역을 점점 더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급한 서류나 당일 배송해야 하는 작은 물건 등을 배달해 주는 ‘퀵 서비스’라 부르는 배달 전문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변화는 배달업을 시스템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넘어오면서 스마트폰 출현과 함께 배달문화는 한 단계 더 발전하였다. ‘배달의민족’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업체의 출현은 배달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이제 철가방으로 통용되던 배달부들은 라이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문직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는 배달업계에 날개를 달아준 시기였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바로 천정부지로 올랐던 배달비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과한 배달비에 소비자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배달 건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아무리 배달문화가 발달한 나라라지만 음식값에 육박하는 배달비용은 배달문화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시장은 예민하고 똑똑하다. 원래 한국의 철가방 배달문화는 별도 배달비가 없었다. 그런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형국이니 잘못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배달업 전문가도 아니고 이런 속 사정을 얘기하려 한 것이 아닌데 쓰다 보니 아픈 곳을 들추었다. 하긴 아픈 곳은 감출 것이 아니라 알려야 한다고 했다. 아픈 곳을 정확하게 알아야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아무쪼록 배달의민족답게 배달문화 본질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속 사정을 알리 없는 외국인들은 오늘도 24시간 집 앞까지 빠르게 배달되는 한국의 배달문화가 그저 신기하고 경이로울 뿐이다. 그러니 내부적으로 라이더 안전이나 배달비 등 문제가 있을지라도 여전히 한국의 빠르고 신속한 배달문화는 K 매력 중 하나이고 자랑할 만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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