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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Feb 21. 2024

도서 리뷰] 칼 같은 글쓰기

글쓰기는 진실과 대면하는 일이다.

칼 같은 글쓰기: 저자 아니 에르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출판 문학동네(2005년)

1. 간단 소감

제목이 강렬하다. ‘칼 같은 글쓰기’라니. 제목을 보고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내 글은?’이었다. 대부분 글쟁이들의 눈은 짝 눈이다. 늘 내 글의 모자람만 보이고 남의 글의 멋스러움만 보인다. 글쟁이들의 병이라면 병이다. 나도 그렇다. 수십 년 글을 써오고 있지만 늘 부족함만 보이고 여전히 내 글이 부끄럽다. 나도 글을 칼같이 쓰고 싶다. 


읽어 보니 제목의 매력에 비해 내게는 좀 어려웠다. 아마도 외서를 싫어하는 내 안의 본능적 거부감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 처음 접하는 저자도 낯섦에 한몫했다. 시작한 했지만 읽는 내내 버벅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한다는 자세로 완독 했다.


책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가 기획하여 '아니 에르노'와 인터뷰한 내용을 빌어 대화체로 쓰여있다. 딱 내가 싫어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도 어쩌자고 집어 들었는지. 다 이게 제목 탓이다. 제목 잘 뽑은 출판사에게 박수를(절대 비꼬는 것 아님)


저자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학 교수로 2022년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노벨상 수상 그 이전에 쓴 책이다. 찾아보니 저자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문단의 문제적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나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이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그녀가 '집착'이라는 글을 시작할 때 썼다는 다음 글에서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번역의 문제인지 어렵다. 있는 그대로 옮겨 본다.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나는 죽고, 더 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어떤가? 이해가 바로 되는가? 번역이 잘못되었는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면 내가 이해가 짧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니 테레즈 블랑슈 에르노: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학 교수, 2022년 노벨상 수상자이다.(1940~)

2. 생각을 한번 다시 하게 해 준 구절들.

p45. 칼 같은 글쓰기

"내가 사용하는 글쓰기 방식을 당신은 '임상적'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 방식이 내 연구의 핵심 부분입니다.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

→저자의 글쓰기 방식과 글쓰기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철학을 보여주는 강한 글귀이다. 제목의 글이기도 한 '칼 같은 글쓰기'라는 강한 말처럼 저자는 글 쓸 때 칼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다 보니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평론가들이 평가할 땐 너무 솔직해서 반대편에서 공격을 당하는 수가 종종 있다고 한다.


p58. 용해되고 싶은 욕망

"글쓰기의 최종적인 목적은, 다시 말해 내가 열망하는 이상적인 글쓰기는, 타인들-다른 작가들, 그러나 그들뿐만이 아닙니다-이 내 안에서 생각하고 느꼈듯, 내가 타인들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저자가 글쓰기를 칼같이 생각하듯 그의 작품은 포장하거나 꾸미기보다는 솔직함을 우선시한다. 독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교화하려 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오로지 교감으로 함께 느끼게 하기. ‘교감으로 함께 느끼게 하기’ 참 멋진 말이다.


p81. 죄책감을 떠안은 재능

"내 글쓰기 바탕에 죄책감이 있다면, 나를 죄책감에서 가장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글쓰기라고 믿습니다. 출신 계급을 변절한 처지에서, 정치적 행위로써 그리고 '헌납'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글쓰기라고 믿습니다."

→"죄책감은 글쓰기를 추동하는 막강한 동력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이유든 죄책감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 글쓰기는 그것을 떠안는 과정이라는 말 공감이 많이 되다.


p97. 변절자

"내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활동입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세상의 베일을 벗기고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질서를 다지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글쓰기의 파급력에 대한 생각을 말한 것 같은데 글쓰기는 생각보다 훨씬 파괴력이 강하고 오래간다. 칼럼을 쓰면서 체험하기도 한 것인데 무엇인가 글로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지당한 말씀이다.


3. 그리고 하고 싶은 말들

글에는 그래서 저자의 삶의 철학이 투영되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제목에 반해 잡은 책을 이렇게 어렵게 읽어 낸다. 아 이런 판단은 순전히 내 기준이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분명 재미있게 읽을 독자는 많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전공필수라 생각하고 일독해 보기를...


이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제목에 홀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하긴 나도 지금 독자 꼬시려고 제목 짓기에 골몰하고 있으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칼 같은 글쓰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세상에 해로운 책은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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